공기업 ‘철밥통’ 깨기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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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철밥통’ 소리를 듣던 공기업에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기관장 해임권고를 받았던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부서장 8명 중 4명을 무보직 실무직원으로 발령하고 26개 팀을 22개 팀으로 통폐합했다. 무보직 부서장과 팀장에 대해선 1년 후 평가 결과에 따라 보직을 다시 줄지 결정하기로 했다.

소비자원과 함께 기관장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은 영화진흥위원회·청소년수련원·한국산재의료원도 조직 수술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3개 본부장급을 폐지하고, 15팀을 9팀으로 줄였다. 청소년수련원은 노사 협의를 통해 성과차등형 연봉제를 도입하고 휴일·야간수당을 줄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 4일 1·2급 상당 전보인사에서 기관장급 4명, 팀장급 8명에게 무보직, 하향보직 또는 경고 조치를 했다. 여기에다 해마다 1·2급 정원의 10%를 무보직과 하향보직으로 발령하기로 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성과보상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 20개 팀을 축소한 데 이어 지난달 실적이 나쁜 간부 4명을 무보직 발령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최근 3년간 업무성과를 평가해 성과가 좋지 않은 간부 5명을 뽑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등도 보직경쟁에서 탈락한 간부들을 무보직으로 근무시키거나, 재취업 교육을 시킨 뒤 퇴직을 준비하도록 하는 등 성과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일부 공기업에 국한된 채 확산 단계에 접어들지는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따로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과다한 임금인상과 복리후생을 자제하고, 성과관리 체계 및 퇴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민간 출신 첫 이사장이 취임한 한국거래소에도 개혁 바람이 날카롭게 불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대규모 임원급 물갈이에 나선 데 이어 곧 부·팀장 등 실무 간부에 대한 본격적인 인력구조 개편에 착수할 예정이다. 신임 김봉수 이사장은 취임 2주 만인 14일 본부장보급 이상 임원 18명 전원의 사직서를 제출받은 뒤 15일 본부장 2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번에 퇴진이 결정된 임원 대부분이 거래소 내부 출신이어서 향후 개혁의 강도가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허귀식·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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