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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한국적 변용 구체화 과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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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사회구성체(사구체)논쟁이 뜨겁던 1980년대 이후 국내 사회학계는 별다른 담론을 키워내지 못했다.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야할 사회학으로서는 일종의 직무유기였다. 누가 어떤 '논(論)' 를 제기해도 마주칠 손뼉이 없어 소리가 나지 않았다. 90년대는 '각개 약진' 의 시대였던 셈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시민사회론이 90년대 논쟁의 대표격으로 등장했다.

민주화이후 맹아를 보이기 시작해 '문민정부' 와 '국민의 정부' 에 이르면서 성장세를 보인 시민세력이 큰 힘이었다.

80년대 말 계간 '경제와 사회' 에서 시작된 이 논쟁은 이후 여러 학술지 및 계간지에서 폭넓게 다뤄졌다. 일종의 유행처럼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라면 누구나 한 두 번쯤 이 문제를 언급했다.

김호기 교수와 유사하게 시민사회론을 적극 부각시켰던 학자들로는 김성국(부산대).유팔무(한림대).조희연(성공회대).조대엽(고려대).신광영(중앙대).강문구(경남대)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정치학자인 강교수를 제외하곤 모두 사회학자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시민사회론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옹호 못지 않게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서울대 김세균 교수가 시민사회론에 내재된 자유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시민사회 개념의 모호함을 비판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 최근 낙선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시민권력의 과잉화에 대한 우려나 '시민단체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의 문제는 또 다른 쟁점이다.

김씨는 시민사회론이 이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고 그 대안으로 '비판시민사회론' 을 제시한다.

비판시민사회론의 골자는 시민사회의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정보화와 세계화의 전지구적 변동을 적극 반영하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김씨의 문제의식은 이데올로기적 논쟁구도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의 객관적 분석과 규범적 지향을 새롭게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기적 가족주의와 진보적 시민운동이 공존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실체를 '이중적 시민사회' 로 분석하려는 김씨의 접근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김씨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려는 바는 시민사회의 비판적 역할을 강화하되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생산적 균형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이런 김씨의 논의는 시장과 국가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시민사회' 를 주장하는 서구 이론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의 한국적 특수성을 중시하는 김씨가 과연 서구 시민사회론의 한국적 변용(變容)을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자못 관심거리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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