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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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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에 반대했다. 화폐가 화폐를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중세의 교황들도 그랬다.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이자를 요구한 성직자들은 직책을 박탈당했다. 회개하지 않고 죽은 대금업자에겐 기독교식 매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이자 수수(授受)는 있었다. 송금이나 환전 형태로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 활용됐다.

500여 년 전 등장한 일부 종교개혁가들도 이자 금지를 주장했다. “빌려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는 것은 도둑질이다. 고리대금업자는 악에 깊이 물든 도둑들이다. 다리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야 한다.” 이 증오에 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였다. 그러나 화폐경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자에 의존해서 살게 되자 교회는 이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람교는 여전히 이자(리바)를 엄격히 금지한다. 중세 유럽인들처럼 무슬림들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가 대표적이다. 수쿠크는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물을 매개로 이자금지를 회피하는 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기계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은행이 직접 기계를 사들여 제공하고 이자 대신 사용료를 받는다. 사용료는 명목상 이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자 금지에 어긋나지 않는다. 수쿠크는 금융혁명으로 일컬어진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원리에서 유사하다. ABS 역시 자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고, 자산에서 얻는 수익금을 채권 보유자에게 돌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채권 발행을 위한 세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표면적으론 ‘테러 자금 전용’을 걱정한다지만 밑바탕엔 기독교계의 반감이 깔려 있다고 한다. 법 개정을 기다려온 국내 기업은 물론 외신으로 소식을 접한 이슬람권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제도화한 이슬람금융을 왜 종교와 결부시키느냐는 것이다. 정부와 시장은 다시 의원들을 설득 중이다. 다음 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꺼림칙한 의원이 있다면 이자 금지가 오랜 세월 기독교의 계율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는 것이 어떤가.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