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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상대팀이 적인지 동료들이 적인지 … 장난 아닌 생존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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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남아공에서 전지훈련 중인 축구 대표팀이 컨디션 저하와 조직력 와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3일(한국시간) 남아공 프로팀 플래티넘 스타스와 0-0으로 비긴 뒤 허정무 감독(오른쪽)이 고개를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루스텐버그=연합뉴스]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을 노리는 태극전사들의 경쟁이 뜨겁다. 허정무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경쟁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국 대표팀은 13일(한국시간) 남아공 루스텐버그 로열 바포켕 스타디움에서 현지 프로팀 플래티넘 스타스와 평가전을 치렀다. 남아공 프로리그에서 10위를 달리고 있는 중하위권 팀이다. 승부는 0-0으로 끝났다.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이동국·노병준·김신욱 등 스트라이커는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전반 22분부터 5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코너킥과 프리킥 기회를 얻었지만 단 한 차례도 유효 슈팅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모두 22명이 경기에 나설 정도로 어수선했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인 패스 조직력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잠비아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전체적으로 몸놀림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두 다 주인공이 되려고 했기에 아무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축구는 소통이 중요하지만 선수들은 입을 꾹 다물고 각자 열심히 뛰었다. 밖에서 볼 때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팀워크’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두현은 경기를 마친 뒤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그라운드에 나선 11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A매치 경력은 두 차례에 불과하지만 나이로는 고참급인 노병준(31)도 “팀이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 분위기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희생을 하는 선수가 있어야 팀이 잘 돌아가는데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오범석은 “훈련장뿐만 아니라 방에서도 경쟁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라고 밝혔다.

대표팀을 감싸는 살벌한 기운은 훈련장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대표팀에 새 식구가 많은 탓인지 아직도 선수들이 낯가림을 한다. 훈련장은 학기 초 교실처럼 어색한 적막감이 흐른다. 때때로 코칭스태프가 목청을 돋울 뿐 선수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훈련에만 집중한다. 선후배 간에 오가는 정겨운 대화도 듣기 힘들다. 박지성(맨유)·박주영(AS모나코) 등 해외파가 합류했던 허정무팀 훈련장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과 대조된다.

과열경쟁을 감지한 코칭스태프가 진화에 나섰다.

대표팀 정해성 코치는 최근 선수들에게 “경쟁하면 팀이 망가진다. 희생을 하면 그 결과는 선수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팀 전체를 생각하는 선수가 결국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 정 코치는 “가슴에 호랑이 마크를 달았으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허정무팀은 14일 남아공 2부리그에 속한 베이 유나이티드와 평가전을 벌인다. 이번에는 고지대에서 내려와 해안도시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치른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이 그리스와 격돌하는 곳이다.

루스텐버그(남아공)=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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