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내 마음 속의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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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도처에 권력이다. 정치뿐 아니라 돈이나 미디어에도 그것은 숨어 있다. 심지어 그 반대편에 있어야 할 지식.종교.문학 등에도 권력은 살아 움직인다. 그러니 끊임없이 충돌이 생기고 나라는 늘 시끄럽다.

흔히 권력이라는 단어에는 '꿈틀거린다' 는 술어가 붙는다. 좀 음흉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을 들이댈 것도 없이 어차피 권력은 '사회적 무의식' 이고 '무의식적 욕망' 의 산물 아닌가.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한 '권력=존재의 본질' 도 같은 맥락이다. 그 유명한 '권력에의 의지' 도 거기서 나온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삶(육체)의 구석구석을 관통해 있는 권력의 속성을 간파해 '생체 권력론' 을 펼친 것도 비슷한 논거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거창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여러 현학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권력은 좀처럼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욕망에서 출발, 자신의 의지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억눌러도 불거져 나오는 것은 이미 무의식 차원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이를 '내 마음 속의 권력' 이라 부르면 어떨까. 여전히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료 파행을 볼라치면 이 표현만큼 적확한 게 없어 보인다.

한빛은행 금융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당사자들 마음 속 권력이 사회 제도적으로 허락된 한계를 넘어서면서 터져나오는 사건이란 의미다.

우리의 고질병 중 하나인 행정규제 얘기를 하면 설명이 더 쉽다. 지난 시절 문민정부는 규제완화에 신경제의 사활을 걸겠다며 월별 점검체제까지 가동했다.

국민의 정부도 어김없이 이를 경제 활성화의 관건으로 간주, 얼마 전엔 집권 2년반 만에 총 1만1천1백25건의 규제 중 70.5%인 7천8백41건을 폐지 또는 완화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시큰둥하다. 관료들의 속셈을 죄다 읽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그들은 몇개의 하찮은 규제를 없애면서 강력한 규제 하나를 새로 추가하는 건 다반사다. 아니면 규제가 없어진 공간에 마음 속 '검은 권력' 을 슬그머니 채워 놓기 일쑤다.

그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환각의 다리' 와 흡사하다.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불구자가 잠결에서 문득문득 다리가 다시 자라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틈만 있으면 비집고 나오는 비리 권력을 도려내기에 급급했지만 모두 헛일 아니었던가.

푸코의 말처럼 권력은 어제도 있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게 뻔하다. 무정부주의를 꿈꾸는 자가 아니라면 권력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란 어렵다.

다만 일그러진 마음을 따라 옆길로 새고 있는 권력의 작동행태를 보며 절망을 거듭할 뿐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의 권력 죽이기' 란 말을 던지고 싶은 거다. 달리 말하면 권력으로부터 '자아 해방' 이다. 현란한 말 잔치라고 빈정거릴지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다.

참여연대 박원순 변호사의 평소 소신에서 건진 해법은 이러하다. 하나는 가난하게 살기 다짐,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짓밟는 것이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사정없이...

여기로부터 욕망은 멈춘다. '내 마음 속 권력' 의 주검을 따라 마음 바깥의 권력도 일제히 흔들린다. 곧 도처에서 권력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퍽퍽퍽.

허의도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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