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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봉사] 악기 들고 달려가죠, 함께 사는 법 배우고 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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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외고 황정현(왼쪽)양이 충주성심맹아원의 이혜정양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최명헌 기자]

충북 충주성심맹아원 생활관. 이곳은 매주 토·일요일이면 중산외고 인터랙트봉사단 학생들과 시각장애 원생들이 어우러진 음악 강습소로 바뀐다. 원생들은 단소를 비롯해 바이올린·플루트·기타 등으로 동요에서 영화·팝·고전 음악까지 소화해 낸다. 운지법을 배우던 때가 1년 전, 연습시간이 일주일에 1~2시간뿐인데 벌써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다. 봉사단을 이끄는 중산외고 민병윤 교사는 “시각장애인은 악보를 모두 외워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박정식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음악으로 끈끈한 가족이 됐어요”

봉사단이 청소·간병 대신 음악교육으로 봉사활동을 바꾼 건 3년 전. 단순한 일손 제공보다 원생들의 재능 계발에 도움을 주자는 데 의견이 모이면서다. 민 교사는 “배우고 싶어 하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뽑아 멘토·멘티로 맺어 줬다”며 "학생들은 봉사 전 장애인에 대한 체계적인 소양교육도 받는다”고 말했다. 값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악기들도 민 교사의 기증과 외부의 도움으로 갖출 수 있었다. 부족한 악기는 자원봉사 학생들이 자기 악기를 가져와 함께 사용했다.

시간 때우기 식이던 학생들에게도 변화가 일었다. 몸이 아닌 마음으로, 봉사가 아닌 우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중학생에게 단소를 가르치는 이주철(18)군은 장래진로까지 바꿨다. 이군에게 단소를 배우던 아버지뻘 시각장애인 이상현(가명)씨가 “특수교사가 잘 어울린다”고 권유한 것이 동기가 됐다. 이군은 “배움의 열정에 감동받아 MP3에 단소 곡을 녹음해 주고, 교습을 위한 연습도 많이 해 오히려 더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하얀·정은주양은 “피아노를 배우는 동갑내기 이혜정양과 단짝이 되면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 있었다”며 “피아노 교사였던 꿈을 사회봉사로 바꿨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명혜연·이현희·황정현양은 “원생들이 악보를 볼 수 없어 운지법과 계명을 매번 하나하나 반복해 줘야 해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며 “그러나 음악이 이들과 공통분모가 돼 서로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초등생 이규현(가명)군은 “정상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자신감을 키워 줬다”며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 줘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음악으로 화합하는 법 배웠어요”

매주 금요일 오후 6시가 되면 서울 강남 대청종합사회복지관에는 멋진 바이올린 화음이 들린다. 복지관의 이름을 딴 ‘DC엔젤스’의 합주 소리다. 합주단은 탈북·재혼·다문화·맞벌이 가정의 초등생들로 구성됐다. 불협화음을 일삼던 아이들은 바이올린 합주를 배우면서 변했다. 형·동생 선·후배로 서로 단점을 보듬어 주며 화음을 이뤄낸 것. 지난달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대회의 시상식에서 개막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집중력이 길지 않아 교습 중에 도망가거나 떼를 쓰기도 했어요. 달래는 데 시간이 더 들 정도였죠. 그런데 아이들이 음감이 늘면서 서로 화음을 맞추느라 협동심과 인내력을 기르게 된 것 같아요.” 지난해 2월부터 바이올린 교육 자원봉사를 해온 지민정(서울압구정중 3)양의 회상이다. 악기는 지양이 활동하는 일산유스오케스트라 학부모들과 인근 악기점 등에서 기증했다. 지양의 어머니 최은순(52)씨도 급식지도로 도움을 보탰다. 지양은 “개인별로 성격과 동기부여법을 파악해 가르치면서 나도 책임감과 화합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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