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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서울서 맛보는 원조 외국인 식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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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글=이가영ㆍ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메밀 크레이프 맛 보셨나요?” 브르타뉴 식당 ‘라 쎌틱’의 주인 샤를 뒤발은 고향의 크레이프를 한국인들도 맛있게 먹어줄 때가 가장 신난다.


영화 ‘카모메 식당’ 속의 대사로 풀어본 그들만의 맛

이럇사이마세(어서오세요!)
개업 한 달 만에 첫 손님을 맞았을 때

라 쎌틱의 ‘콩플레트’

낮 12시30분. 서울 창천동 ‘라 쎌틱’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집의 주인인 프랑스인 샤를 뒤발(50)과 유영진(27)씨는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점심시간임에도 손님이라곤 한 명도 없는 식당을 찾아들어간 첫 손님이 신기한 표정이다. 프랑스 서북부 브루타뉴식 크레이프식당을 연 지 석 달째. 하루에 손님이 딱 두 명인 날도 있었고, 없는 날도 있었다. 뒤발은 요즘 주방보다 홀에 나와 창 밖을 쳐다보는 일이 더 많단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가장 지치네요.” 그는 식당을 연 뒤 가장 어려운 일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석 달 전 서울 홍대 앞에 일본 오사카식 카레점 ‘사토시 카레’를 연 스즈키 미치코(67)의 하루도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래도 맛만 좋으면 손님이 오게 돼 있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 가게 위치를 묻는 전화를 받으면 그 사람이 올 때까지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리게 된다.

“단지,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아 좋은 거예요.”
하고 싶었던 식당을 해서 좋겠다는 얘기에

“서울이 아니었다면 지금 케냐에서 크레이프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지난해 여름 노르망디에서 같은 제과제빵 학교를 다닌 친구 유영진씨를 만나러 왔다가 함께 식당을 차렸다는 뒤발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서울에 식당을 차린 데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젊을 때 터키·북유럽 등에서 살아본 그였기에 언제든 고향을 떠날 준비는 돼 있다고 했다.

나는 뚱뚱한 동물이 좋다. 그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좋다.
첫 장면의 내레이션

사토시 카레의 ‘사토시 스페셜 카레’

‘한국의 카모메 식당’들은 자기가 만들 줄 아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드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한국 사람 입맛에 맞추겠다고 어색한 메뉴를 내놓지 않고 자기식대로 한다. 서울 이대 앞에서 대판옥이라는 상호로 ‘일본식 분식집’을 하는 70대 일본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는 순 일본 오사카식 다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 라면을 판다. 할아버지가 두 달에 한 번씩 일본에 가서 재료들을 사서 나른다. 스즈키는 석 달에 한 번 일본을 오가며 재료를 사온다. 일본 카레 특유의 단맛과 100% 강황 가루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카레가 너무 달면 한국 사람이 싫어한다는 임씨의 충고에도 미치코는 말을 듣지 않는다. 감자크로켓, 새우튀김도 한 번에 10개 이상 준비하지 않고, 김치·무절임 등 밑반찬도 집에서처럼 조금씩 담근다.

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참 많지요

한국말을 못하는 뒤발은 손님이 크레이프에 조금 관심을 보일라치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속시원히 알려주고 싶어 답답해 한다. 크레이프만큼 대화에서 고향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손님들과 대화가 시작되면 어느새 한국인에게 생소한 브르타뉴 지방을 소개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지도를 가져오고 아예 관광안내서를 펼쳐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식당을 하며 한국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있다. “한국에선 연애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커플이든 어디에 앉을지, 뭘 먹을지 모두 여자가 결정해요.”

카모메 식당이 드디어 만원을 이뤘다
마지막 장면 내레이션

대판옥의 ‘다코야키’

손님이 하나둘씩 늘어나 이제는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작은 외국인 식당도 있다. ‘대판옥’과 서울 이태원의 ‘셰프 마일리’가 그렇다. 10석 남짓의 좁은 대판옥은 학생 상대 장사라 가격은 3000~4000원. 그런데 맛 하나는 튼실해 식사시간이 아니라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셰프 마일리’는 오스트리아 출신 셰프 크리스티안 마일링거(46)가 한국인 부인과 차린 수제 햄·소시지 전문식당이다. 처음엔 테이블 서너 개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잘돼 확장 이전했다. 1층엔 햄·소시지를 만드는 델리, 2·3층은 레스토랑이다. 현지 가정식의 맛이어서 국내 오스트리아·독일인들이 향수를 달래고 싶을 때 자주 찾는다고 한다.

[서울의 ‘카모메 식당’서 뭘 먹을까]

라 쎌틱 프랑스에서는 검은 메밀가루 반죽에 치즈 해산물 등을 올려먹는 갈레트가 한 끼 식사다. 이 식당에선 그런 메밀 크레이프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손에 들고 먹는 크레이프가 아닌 반죽 위에 토핑을 놓아 칼과 포크를 들고 ‘썰어’ 먹도록 나온다. 기본은 계란프라이·베이컨을 올리는 ‘콩플레트(8500원)로, 프랑스에서 크레이프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메뉴다. 주인은 “디저트 크레이프를 먹을 때 반죽에 버터·설탕만 뿌린 크레이프(베르 쉬크르)를 맛봐야 그 집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차 신촌역에서 연대 방향 굴다리 맞은편 건물 2층. 02-312-7774.

사토시 카레 주인이 망설임 없이 추천하는 것은 가장 싸고 기본적인 ‘사토시 카레(6000원)’였다. 밥과 카레만 나오지만 돈가스·생선가스와 함께 먹으면 그만큼 카레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양이 좀 적을 땐 차라리 ‘고로케(1000원)’를 추가하면 된다. 미리 달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달지는 않았다. ‘사토시 스페셜(1만2000원)’에 나오는 새우·조개튀김은 싱싱하고 실하다. 홍대 정문 건너 푸르지오 상가 126호. 02-322-6824.

대판옥 문을 열자마자 할아버지가 다코야키를 굽고 있고 그 옆에서 할머니가 라면을 끓인다. 주문하면 바로바로 구워내는 다코야키(3500원)는 냄새도 좋지만 손가락 한 마디보다 큰 문어 조각이 들어가 속도 알차다. 한 접시에 10개다. 위에 뿌려주는 소스가 살짝 달아 단맛이 싫은 이들은 미리 얘기하는 게 좋다. 간장라면·미소라면 등과 함께 다코야키 5개를 먹을 수 있는 세트메뉴가 5000원으로 가장 비싸고, 모든 메뉴가 3500~5000원이다. 이대 정문 앞 미스터피자 옆. 018-216-4770(할아버지가 한국말을 못해 할머니 휴대전화로 연락 가능하다).

셰프 마일리 천상 요리사의 푸근한 몸매를 지닌 셰프 크리스티앙 마일링거(46)가 직접 30여 가지의 햄과 소시지를 쉴 새 없이 만든다. 양 창자로 만든 튜링거 소시지, 매콤한 이탈리안 소시지, 6개월간 말려 주렁주렁 달아놓은 살라미까지, ‘소시지·햄 백화점’ 같다. 가장 인기 있는 소시지는 가느다란 손가락 모양의 뉘른베르크와 흰색의 뮌헨 소시지. 처음 들른다면 소시지 플래터(1만4500원)를 시키는 게 무난하다. 또 독일식 감자전인 ‘뢰스티’ 위에 훈제연어를 얹은 요리(1만6500원)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이태원역 4번 출구 기업은행 건물 옆. 02-794-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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