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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10만 명 시대, 배려·존중으로 풀 새 100년의 과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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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20면

서울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이·박 중 하나가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져보면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한국인 가운데 김·이·박 세 성씨를 가진 사람은 45% 정돕니다.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입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는 286개의 성씨가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외국 출신 귀화자의 성씨도 442개나 됩니다. 이게 벌써 10년 전 얘기니 지금은 더 많아졌을 겁니다. 더구나 국적을 떠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성을 모두 합한다면 말이죠.

우리 안의 레이시즘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주민은 110만 명이 넘습니다. 2006년 53만 명이었던 것이 불과 3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전체 인구 4900여만 명의 2.2%에 달합니다. 전국 256개 시·군·구 중에 15곳은 외국인 주민의 비율이 5%를 넘습니다. 남산이 있는 서울 중구도 8%입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열 번에 한 번쯤은 외국인이 맞을 수가 있는 겁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 놀라운 곳도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본동은 인구의 40%가 외국인입니다. 김·이·박과 엇비슷합니다.

지구촌의 대세가 세계화이듯, 한국이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살색’으로 불리던 크레파스 색깔이 ‘살구색’으로 불리게 된 것이 한 예죠.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크레파스를 칠하듯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난해 벌어진 사건이 이를 보여줍니다. 28세의 인도인 교수가 버스에 탔다가 한국인에게서 ‘더럽다’ ‘냄새 난다’ 등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일을 겪었죠. 이런 말을 한 한국인은 모욕죄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이건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취재팀은 다문화 전문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외국 출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에게서 무시 당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경험이 있느냐고. 응답자 34명 중 70%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을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는 핑계가 단지 외국인이라서는 아닙니다. 피부색이 검다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말이 서툴다고 등등 다양하죠. 그런데 어딘가 낯익은 내용입니다. 구한말 하와이를 시작으로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이, 혹은 1970년대 광부·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됐던 한국인들이 겪었던 설움과도 비슷합니다. 과거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러 가지 꿈을 품고 외국에 살게 된 한국인들이 겪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답변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마붑 알엄은 “(외국인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내 친구나 친척, 같이 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반두비’ ‘로니를 찾아서’ 등의 영화에 외국인 노동자 역할로 출연한 배우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에 대해 그는 “미국 비자가 없어졌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전부 미국에 가서 살려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합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강성혜 소장은 “배려와 존중”을 답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대뜸 “나는 청국장을 먹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한국인도 이처럼 취향이 다르듯,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나 결혼이주자들에게 일방적인 한국화를 주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강 소장은 ‘다문화’라는 표현에 대해 “한국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집안에 따라 문화가 다르지 않으냐”면서 다문화 울타리의 폭을 넓힐 것을 주문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여러 외국인들은 자신들을 도와줘야 할 대상, 한국이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강성혜 소장은 이를 자녀 과보호에 비유합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든 결혼이주자든 작지 않은 결단으로 한국에 온 것”이라며 “처음엔 한국 사회를 몰라 낯설고 불안해해도, 자립할 능력이 있고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의 시련을 딛고 지금 같은 경제발전과 사회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다인종·다문화의 조화 역시 새로운 100년의 출발선에서 한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풀어낼 수 있는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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