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방자치 본질은 훼손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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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방자치제도의 전면 손질이 추진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지자체 단체장의 직무태만.부당 행정행위.인사권 남용 등에 쐐기를 박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 한다.

현실을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지방자치에도 개혁과 수술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은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택해야 옳다.

1995년 출범한 지방자치제도는 그동안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일부 지자체 단체장들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조직경영과 지나친 정치적 인사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제효율을 꼼꼼히 따진 뒤 복리증진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쌓기나 전시.홍보 차원에서 아까운 예산을 펑펑 쓴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특히 선거기간 중 단체장들의 지방공무원들에 대한 '줄서기' 강요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이들은 후보 시절 지방공무원들에게 자신을 공개지지토록 압력을 가하기 일쑤였고, 선거 후엔 비우호적인 부단체장 등 공무원들을 드러내놓고 내쳤다. 그러니 지방공무원들은 유력 단체장 후보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했고 직.간접으로 선거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일부 단체장은 임기보장을 믿고 언론기관과 불협화음을 빚었고 주민 위에 군림하는 작태를 연출했다. 이러니 지자체의 비협조.비능률 등 환부를 도려낸다는 명분이나 빌미를 지자체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자부가 올 가을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한 대안들이 풀뿌리를 짓밟는 결과를 초래해선 안된다. 부단체장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되돌리려는 것은 중앙의 인사적체를 풀기 위한 편법으로 비칠 수 있다.

이밖에 단체장 서면경고제와 대리집행 등의 제도도 좀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우리는 중앙정부의 지자체에 대한 예산 차등지원과 인센티브제의 확대 및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치단체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따라 국고 보조금.교부금 등 각종 예산을 차별적으로 배정하는 등 유인책도 잘만 하면 상당수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지방의회가 단체장의 독선과 비효율적 판단, 행정행위를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방의회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북돋워 주는 게 옳다. 해당지역의 시민단체도 주민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나름대로 힘써야 할 것이다.

지자체는 개혁돼야 하나 중앙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금물이다. 도입단계의 부실을 빌미삼아 본질부터 훼손하려 해선 안된다. 선진 외국의 단체장 견제장치 등을 참고하되, 우리의 짧은 역사와 현실을 감안해 걸음마 단계의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게 도와야 한다. 단체장들의 자성과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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