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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 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꾼다 <4> 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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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인도 구자라트주 수라트시 상가 건물에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수라트 지점 앞. 이 회사는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인 운용 인력을 채용해 현지 투자자들의 성향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내에서 개발한 상품을 도입해 본격적인 금융상품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인도 펀드 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빠른 속도로 쑥쑥 크고 있습니다. 펀드 투자에 대한 관심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하면 인도 펀드 시장은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겁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의 아린담 고슈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펀드 시장의 성장세를 ‘폭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거듭 강조했다. 수탁고 기준으로 연간 38%씩 고속 성장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 잠재력을 노리고 2006년 말 인도에 진출한 곳이 미래에셋자산운용. 뭄바이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전국에 13개 판매지점을 뒀다. 미래에셋이 인도에서 추구하는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 그리고 차별화다. 인도인을 위한, 인도인에 의한, 인도의 펀드를 만들어 파는 게 목표다.

그래서 운용 책임도 현지인이 맡았다. 고팔 아그라왈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인도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골라 펀드를 운용한다. 그를 믿는 인도인들이 투자한다. 또 이 회사 직원 79명 중 한국인은 두 명뿐. CEO를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인도인이다. 상품 기획, 운용, 마케팅, 판매는 물론 채용, 보상까지 모두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12월 중순 찾아간 뭄바이의 이 회사 인도법인 사무실 입구엔 ‘차이나 어드밴티지 펀드’ 출시를 알리는 홍보물이 내걸렸다. 이 회사가 세 번째로 출시한 주식형 펀드 상품이다. 임덕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인도 최초의 순수 차이나 펀드”라고 소개했다.

현지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상품을 미래에셋이 먼저 선보인 것이다. 앞서 내놓은 ‘글로벌 커머디티 주식형 펀드’도 ‘인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아시아와 남미 등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를 미래에셋이 처음 선보인 것이다. 고슈 CEO는 “소규모의 외국계 독립 운용사가 인도 시장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 없던 혁신적인 상품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펀드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독립재무설계사(IFA)를 운영하는 라비 콜히는 “미래에셋은 인도 토종 펀드나 미국·유럽 운용사들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된 펀드를 내놓고 있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짜려는 투자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인도 자산운용업계는 잠재력이 높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인도계와 외국계를 합쳐 38개 자산운용사가 영업 중이다. 상위 10개사가 전체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구조다. 프랭클린 템플턴, 피델리티, AIG, BNP파리바 등 유럽 및 미국계 운용사들이 1990년대 들어와 선두군을 형성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아시아계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인도에 진출한, 아시아계 선두주자다.

미래에셋이 입주한 건물 같은 층에는 ING자산운용이 들어와 있다. 맞은편에 새로 짓는 건물이 완공되면 JP모건이 통째로 쓸 예정이다. 몇 블록 건너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운용사인 UTI인베스트먼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뭄바이 거리에는 피델리티, 프랭클린 템플턴 같은 외국계 운용사들의 홍보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버스 정류장이나 옥외 간판은 ‘당신의 지갑을 불려 주겠다’는 광고 문구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끈다.

미래에셋도 진출 초기에는 TV·신문 및 옥외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다. 광고비만 10억~20억원을 쏟아부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그동안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상품 홍보를 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홍보 담당 직원 두 명을 채용해 현지 언론에 기삿거리를 제공한다. 유지상 과장은 “현지 신문과 잡지에 수익률 상위권인 미래에셋 펀드 기사가 나고, 애널리스트의 전망이 인용되면서 브랜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인도 증시의 대형 성장주에 투자하는 미래에셋 오퍼튜니티 펀드는 동종 펀드 중에서 최근 연간 수익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글로벌 커머디티 주식형 펀드도 연초 이후 수익률이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미래에셋의 인도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인도 증시가 최고점이던 2008년 1월 첫 상품을 출시했는데, 그해 말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인도 주식시장도 내리막으로 접어들었습니다. 2만 포인트에 달했던 주가가 8000선까지 추락했어요.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환매 요구가 줄을 이었죠.”(임덕진 CFO)

170여 명이 숨진 뭄바이 테러, 현지 기업의 2조원대 회계 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인도 증시는 공황에 빠졌다. 신흥시장에서 겪을 수 있는 ‘컨트리 리스크’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인도 매니저들은 시장이 하락하자 주식 편입 비중을 낮추고 현금화로 몰렸다. 미래에셋은 거꾸로 갔다. 환매에 응하는 수준에서만 주식을 팔고, 주식 편입 비중을 높게 유지했다. 시장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좋은 기업과 주식을 찾아내 투자하는 게 미래에셋의 투자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주식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미래에셋 펀드는 수익률이 살아났지만 주식 비중을 확 줄인 인도 자산운용사 펀드들은 따라오질 못했다.

미래에셋은 2년간 8개 펀드를 출시해 4만5000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수탁고는 600억원이 조금 넘는다. 이제 막 궤도에 올라 속도를 낼 준비를 마친 상태다. 고슈 CEO는 “올해는 코리아 펀드와 브라질·러시아 펀드 등 미래에셋의 주력 상품을 현지에 소개해 이머징 시장 전문가라는 기반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를 본격적인 ‘금융수출’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특별취재팀=김준현(베트남·캄보디아), 김원배(인도네시아), 김영훈(미국), 조민근(중국), 박현영(인도·홍콩), 한애란(두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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