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조기유학규제 전면철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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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행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아니한 학생들의 자비유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1996학년도부터 99학년도까지 4년간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을 어기고 불법유학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거의 만명에 가깝다고 한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지난 1월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올해 상반기 중에 조기유학에 대한 제한을 전면 철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당시 교육부는 국제화.개방화시대에 따른 다양한 교육기회 부여 및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국민의 교육선택권에 대한 제한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전면자유화를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난 주 갑자기 교육부는 중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에 대해서만 자비유학을 자유화하고, 초. 중학생들의 유학은 계속 금지하겠다고 입장을 바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의 발표를 믿고 유학 준비를 해온 초. 중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은 심각한 혼란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헌법소원을 낼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여론수렴 결과 초.중학생은 부모가 동행하지 않으면 무분별하고 충동적인 유학생활에 따른 탈선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의무교육단계인 중학교까지는 국내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 단계적으로 자유화하려는 취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이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파악된 조기유학에 따른 부작용 등을 고려해볼 때 초.중학생들에게 조기유학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쟁점은 자유민주국가 체제에서 자녀를 조기유학시킬 것인가, 아닌가의 판단을 국가의 획일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현행법이 국가에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선택권' 에 간섭해 자비 조기유학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헌법에 의하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자녀의 교육에 관한 자유와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중의 하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한은 반드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근본원칙 중의 하나인 법치주의에 의하면 대통령이 수반인 행정부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야 하고,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한해 대통령령을 포함한 행정명령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 법령들을 검토해보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자비유학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법적인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했는지에 관해 심각한 의문이 있다.

교육부가 개정을 하겠다고 입법예고한 '국외 유학에 관한 규정' 은 법률체계상 대통령령인데, 교육기본법 제29조 제3항을 그 근거로 해 자비유학.국비유학 및 국비연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기본법 제29조 제3항은 "국가는 학문연구의 진흥을 위해 국외유학에 관한 시책을 강구해야 하며" 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교육기본법의 관련규정은 행정부에 대해 학문연구의 진흥을 위해 국외유학에 관한 시책을 강구할 의무를 부과한 것이지, 국민의 자비유학을 제한할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교육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대통령령인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이 자비 조기유학의 부작용 내지 폐단을 예방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시책을 규정한다면 정당한 위임의 범위 내라고 하겠지만, 자비 조기유학 자체를 전면 금지 내지 제한한다는 것은 위임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육기본법에 자비유학을 제한하는 근거규정이 없는 관계로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을 위반해 자비유학을 한 경우에도 처벌할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이번 입법예고안에 대해 "위반 학생을 실질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는 선언적 의미의 조치" 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실효성 없는 명령의 남발은 국민이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을 희석시켜 법의 권위를 실추시킬 뿐이다.

법적인 근거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자비유학 금지조치는 하루 빨리 전면 철폐해야 한다. 공부를 해보겠다고 유학을 간 어린 학생들을 더 이상 '불법' 유학자로 낙인을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희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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