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에이즈' 감추고 덮어둘 때 지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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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콘돔의 사용을 유도하는 공익광고가 오늘부터 한달간 TV를 통해 방영된다. 보건당국은 이참에 '콘돔 붐'을 조성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도덕적 타락의 상징으로 비난받는 바람에 내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에이즈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적극 대처할 전환점이 마련됐다.

국내 에이즈 감염자가 늘어나는 추세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는 것은 각종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2004년 6월까지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2842명이지만 실제 감염자 숫자는 10배로 추정된다고 한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302명의 내국인 감염자가 발생했고, 국내 거주 외국인 신규 감염자도 82명에 이르는 등 급증세다. 이렇게 상황은 심각해 가지만 우리의 대처는 지나치게 느슨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감염자들이 처한 현실은 절망 그 자체다. 일단 감염 사실이 노출되면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서 외면당하고 사회를 등져야 한다. 에이즈는 불치의 병이고 천형쯤으로 치부하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감염 사실을 숨기게 되고 이는 다시 감염의 확산이라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감염자 36명이 자살로 생을 끝낸 것은 우리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이 병도 다른 만성질병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하다. 당국은 일과성 이벤트로 TV광고를 이용해선 안 된다. 사회단체와 함께 다양한 예방교육으로 전파 경로를 차단하고 수혈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혈액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취약 집단인 외국인.동성애자를 중심으로 익명 검사를 활성화해 감염자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절실하다. 감염 사실을 당국에 알려 관리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국가적 차원의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비감염자가 감염자들의 처지와 인권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지금처럼 음지에서 병이 창궐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병을 드러내 관리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효과적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