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7년간 암자기행…소설가 정찬주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소설가 정찬주(鄭燦周.47)씨가 7년간 깊은 산, 깊은 계곡의 암자만 찾아다니는 것은 본 적도 없는 성철(性徹)스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鄭씨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소설습작을 위해 산사를 찾았던 1974년이다. 동국대 국문과를 다니던 중 창작에 전념키로 결심하고 고향(전남 보성)인근에서 가장 한적한 절을 찾아 들어간 게 화순 쌍봉사다. 당시는 스님 한 분이 지키는 허물어져가는 절이었다.

鄭씨는 혼자 절을 지키다가 "부처님의 모습을 봤다" 고 한다. 한겨울 불상에 앉은 먼지를 닦아주던 중이었다. 손바닥 오목한 곳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밀어내니 손금이 드러났다. 한참을 보다가 고개를 드는데 부처님의 얼굴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곧 부처님의 미소가 온화하게 다가왔어요. 그런 외진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앉아서도 미소를 짓는 모습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구나 싶더군요. "

불교와의 인연은 그렇게 그냥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씨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대학 졸업후 교편생활을 하던 중 문득 문득 부처님의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그 생각을 소설로 모은 것이 90년 선보인 소설집 '새들은 허공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다. 그가 불교에 본격적으로 심취한 것은 93년 성철스님이 입적하고부터다.

3천배를 한 뒤에야 만날 수 있는 큰 스님을 뵈러갔다가 삼천배를 못해 되돌아온 적이 있던 鄭씨는 입적 소식을 듣고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기로 작정했다. 스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히 그가 수행했던 암자를 자주 찾게 됐다.

"암자를 찾아가기 위해 한참 산을 오르다 보면 무념무상의 상태를 느낍니다. 그리고 청정(淸淨)공간인 암자에 들어서면 저절로 모든 욕심이 사라지지요. "

그런 느낌이 좋아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산은 산 물은 물' 을 98년 발표한 뒤에도 암자기행을 계속해왔다.

'암자로 가는길' 를 내놓은 이후 최근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 까지 암자관련 산문집을 내다 보니 "같이 암자에 갈 기회를 달라" 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래서 만들어진 모임이 '암자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다.

모임에 가장 적극적인 회원은 아내 박명숙씨다. 가톨릭에서 개종해 지금은 아침마다 백팔배를 올린다.

아내가 이해해주는 덕분에 鄭씨는 아예 쌍봉사 인근에 작은 산방(山房)을 짓고 들어앉을 예정이다. 큰 스님이 가르쳐준 "덜 먹고, 덜 쓰고, 덜 입으면서도 만족하는" 소욕지족(小慾知足)의 삶을 꿈꾸면서.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