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품에 다가가는 서울대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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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대박물관이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 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실물 일반공개로는 국내 처음인 '고구려 특별전' 을 지난달말 마친데 이어 이번에는 설치미술전을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는 고구려 의상과 장신구를 소재로 한 패션쇼를, 겨울에는 조선후기의 천재화가 장승업 관련 미술전을 개최키로 하는 등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오는 월16일까지 열리는 '역사와 의식, 초대작가 5인의 설치미술전' 은 '전통과 현대를 통시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시민들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욱 친밀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자' 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 문주.박성태.윤동천.임옥상.조덕현 씨 등 서울대 미대 출신 중견작가들의 신작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 혹은 현재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독창적인 시각을 실험적인 기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주 씨는 10대의 TV모니터에 시간별로 다른 바다의 수위와 분위기를 담은 '시간의 바다' 를 내놨다. 박성태 씨는 흙이 가득 담긴 항아리속에 묻혀 얼굴만 내놓고 있는 갓난애의 모습을 46점 설치한 '천상의 꽃' 을 전시 중이다.

뜨거운 항아리의 흙속에서 울고있는 영아들은 앞으로 살게될 삶의 고해를 미리 겪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윤회의 사슬을 불길로 읽는 작가의 눈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윤동천씨는 철구조물위에 한줄로 늘어선 꽃무더기들이 모터에 의해 회전하는 '꽃바다' 를 보여준다.

삭막한 전시공간과 구조물속에서 꽃조차 기계에 의해 휘둘리는 모습은 독재국가에서 국민들이 동원된 겉만 화려한 행사를 생각나게 한다.

임옥상씨는 세워놓은 대형 흙판에 얼굴이나 포옹하고 있는 남녀 등이 새겨진 '일어서는 땅-2000' 을 내놓았다.

한때의 분노나 사랑도 모두 흙과 민중이라는 거대한 토대에 잠시 흔적을 남길 뿐 사라지고 만다는, 혹은 이런 것들이 합쳐져 인간의 대지를 이룬다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거대 담론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확인하는 듯 하다.

조덕현씨의 '낯선 과거로부터' 는 플라스틱 송아지 조상 10여마리를 야외에 풀어놓고 있다. 송아지들은 소의 선사시대 조상처럼 보이며 이제부터 위험하고 낯선 세상을 향해 야생동물로서 풀려나게 될 운명이라는 취약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밖에 5명이 공동제작한 길이 11m의 대형현수막 '역사와 의식' 도 박물관 입구에 내걸었다.

박물관 측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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