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로드 홀' 듀발 삼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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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 129회 브리티시 오픈이 열린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1990년 닉 팔도가 기록한 코스 레코드 18언더파를 깨고 19언더파를 친 타이거 우즈에게로 메이저대회 그랜드 슬램을 허용하면서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24일 새벽(한국시간)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조인 우즈와 데이비드 듀발이 17번홀(파4.4백55야드)의 티박스에 올랐다.

오른편 건물에 가려 페어웨이가 보이지 않는 악명높은 홀이다. 우즈가 4라운드 동안 기록한 보기 3개 중 2개를 여기에서 작성했다.

11언더파로 공동 2위를 달리던 듀발은 드라이버샷을 무난히 페어웨이 오른쪽에 떨어뜨렸다. 홀컵까지는 1백81야드가 남았다.

그는 온 그린을 노리며 6번 아이언으로 회심의 세컨드 샷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기대와는 달리 그린 앞쪽, 벽의 높이가 약 2m 되는 벙커에 처박혔다.

탈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세번째 샷은 벙커를 벗어나는 듯했으나 경사진 벙커 턱을 타고 다시 벙커 안으로 떨어졌다. 처음보다 벙커 벽에 더욱 가까웠다.

그는 다시 샷을 날렸고 공은 또 벙커벽 바로 밑에 떨어졌다. 샷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제서야 듀발은 공을 벙커 뒤쪽으로 쳐냈고 벙커 안에서만 4타만에 그린에 공을 가까스로 올렸다. 벙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식간에 무려 4타를 까먹었다.

결국 2퍼팅으로 홀 아웃한 그는 쿼드러플(4오버파)을 기록, 7언더파 11위로 내려앉았다.

78년 일본 골퍼 도미 나카지마가 공을 빠뜨려 9타를 기록한데 연유, 나카지마 벙커로 불리던 이 벙커를 호사가들은 벌써 '듀발 벙커' 라고 개명했다.

듀발은 이 홀에서 순식간에 3억6천만원을 날려버렸다. 공동 2위 어니 엘스와 토마스 비욘은 각각 37만1천9백달러(4억1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듀발은 이의 6분의1도 안되는 5만6천달러(6천1백만원)를 챙기는 데 그쳤다. 우즈가 수령한 75만달러중 통상 10분의1을 받는 그의 캐디보다 적은 셈이다.

듀발은 "공이 벙커 가장자리에 처박히는 바람에 탈출에 애를 먹었다" 며 "운이 없었지만 벙커를 탓할 생각은 없다" 고 말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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