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라이프] 압구정동 박종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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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 맥도널드와 파파이스 점포 사이 0.75평. 서울대 출신의 장사꾼 박종수(朴鍾琇.30)씨가 장신구를 팔며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월세 2백50만원, 전세보증금 2천만원짜리 가게다. 워낙 좁아서 실제 매장은 가게앞 가판대다.

낮 12시 가게문을 열고 귀걸이, 인형 등을 가판에 정리하는 朴씨의 차림은 영락없는 '오빠' 다.

한쪽귀의 귀걸이, 갈색으로 부분 염색한 머리, 반바지에 샌들-. 그러나 그는 네살난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가 귀걸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한지 4개월쯤된 지난해 7월. '이래선 안되겠다. 고객에 맞추자'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조금씩 장사가 몸에 익기 시작했다. '나만의 패션' 을 원하는 신세대들을 위해 즉석 제품(매출의 30%)을 만들 만큼 발전했다.

서울대 섬유.고분자 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6년부터 3년간 코오롱상사에서 의류 수출을 담당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자신의 뜻대로 물건을 고르고 팔고, 나아가서는 직접 만들고-. 이왕이면 한살이라고 젊을 때 밑바닥에서부터 소비자를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가게를 보러왔을땐 "쪽팔려서 못할 것 같았다" 고 한다. 마음을 다잡았다. 말렸던 아버지도 가판에서 땀흘리는 그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가게에선 이런 이력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구석에 놓인 영어잡지 '뉴스위크' 에서 언뜻 느껴질 뿐이다.

"스스럼없이 고객이나 도매상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서울대 출신이란게 오히려 짐이 될 때가 있죠." 폼나는 벤처기업을 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 "이것도 벤첩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제 그는 물건을 살 고객과 그저 구경만 하는 고객을 한눈에 알아 볼 정도가 됐다.

시장조사와 물품 구매를 위해 두달에 한번은 일본에 간다. 수입도 직장을 다닐때보다 3배정도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법 모조제품 단속에 걸려 법원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터득한 그의 장사 수칙 1조는 아무리 잘팔려도 사재기는 안한다는 것. 압구정동의 유행은 1주일이 무섭게 변하기 때문이다.

"부일외국어고 학생 참사가 난 다음날 손님들에게 물었죠. 참 불쌍하죠 하고. 절반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만 끔뻑거리던데요. 자기의 관심분야가 아니면 철저히 외면하는 것 같아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물으면 '언제 만났어요' 할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그가 본 압구정 젊은이들의 단면이다. 그는 요즘 압구정을 누비는 젊은이들의 80%는 강북 등 타지역에서 온다고 말한다.

대신 청담동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원조 압구정족들은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르다.

한번 휙 보고는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주세요" 하고 말한다. 값은 잘 묻지도 않는다. 흥정도 없다. 이런 그들이 朴씨에겐 최고의 고객이다. 값은 1천원에서 35만원까지지만 대개 1만원 안팎이다.

그는 올해안에 압구정동에 지점을 낼 계획이다.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갖는 것이 꿈이다. 그만큼 고되다. 지난 1년여간 추석과 설날 단 이틀만 쉬었다. 이틀에 한번은 새벽 4시까지 동대문 시장을 누빈다. 아이와 못놀아 주는 것이 가장 미안하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모았다가 애가 크면 줄 생각입니다. 그 때쯤이면 그 녀석도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겠죠."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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