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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 칼럼] 개헌논의, 내년 중반부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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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물밑에서만 오가던 개헌론이 지난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수면으로 떠올랐다.

대통령 4년 중임(重任)제.부통령제 부활.영토조항 개정 등이 그 주요 골자다.

여야 의원들의 개헌론 제기는 '시기상조' 란 여야 지도부의 조심스런 반응으로 주춤해진 상태지만 현행 5년 단임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어 재연되는 건 시간문제다.

거론된 내용 중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는 제3조 영토조항은 헌법 전문(前文)과 4조의 평화적 통일 지향과 직결돼 있다.

우리가 통일이란 국가목표를 포기하거나 잠정적으로나마 남북한이 각기 완전 독립국가로 공존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상 이 조항의 개정은 고려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1948년 우리나라의 첫 헌법과 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채택했던 제도다.

그 모델은 물론 미국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선 한번도 실현되지 못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장기집권욕 때문이다.

이승만(李承晩)정권에는 54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박정희(朴正熙)정권에는 69년의 '3선개헌' 으로 4년 중임제는 시행도 못 해보고 폐기됐다.

결국 우리 헌정사에서 4년 중임제는 장기집권으로 가는 길몫 구실밖에 못 한 셈이다.

李.朴정권의 두 차례 장기집권에 대한 반성에서 도입된 대통령단임제 또한 심각한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7년 또는 5년)과 국회의원(4년) 임기의 엇갈림으로 인한 혼선과 잦은 레임덕현상으로 국정의 계속성이 손상되고 행정이 표류.약화되는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4년 중임제 회귀(回歸) 주장은 지난 20년간의 단임제 경험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문제는 과연 지금은 재선된 대통령의 3선 유혹을 봉쇄할 수 있느냐다.

단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대통령이 이미 세명이나 나왔다. 우리 국민의 민주화 의지도 20여년 전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다시 4년 중임제가 도입되면 과거 두차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기대되는 이유다.

그러나 4.19 이후 이 땅에 또다시 부정선거나 3선개헌시도가 재현되리라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초기 12년간 지속했던 우리나라의 부통령제는 실패한 제도였다.

중도 사퇴한 이시영(李始榮)초대부통령의 말처럼 '시위소찬(尸位素餐 :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해 국록만 축내는 일)' 이거나 대통령과 대립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초기 6년여 동안은 국무총리제도와 중복돼 부통령은 대통령 궐위시 승계권도 없는 데다 국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도 막혀 있었다.

사사오입개헌 이후 대통령 궐위시 승계권이 주어지고 참의원의장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야당에서 부통령이 나오는 바람에 참의원은 구성조차 안되고 부통령은 여야 대립과 정치불안의 상징이 됐다.

4년 중임제와 부통령제 재도입 등 개헌문제가 논의된다면 이러한 과제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

현행 헌법 128조 2항에는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선 효력이 없게 돼 있다.

이 규정을 더욱 분명히 해 과거 우리나라 민주정치를 후퇴시켰던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기도를 원천봉쇄할 필요가 크다.

4년중임제가 결국 장기집권의 디딤돌이 됐던 과거는 결코 반복돼선 안 될 일이다.

부통령제도 과거의 실패가 재현되지 않으려면 별도의 선거가 아닌, 미국처럼 대통령과 동일 티켓후보로 해 같은 정당에서 정.부통령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대신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부통령이 국무회의 부의장을 맡는 등 유고시 승계권뿐 아니라 평시에도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에 참여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헌문제는 차기 대권의 향방과 직결되는 중대사안이다. 현 대통령의 원만한 국정수행을 위해선 때이른 개헌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개헌을 한다면 차기 대통령선거 전해인 내년 말까지는 매듭지어야 한다.

올해는 각 정당 내부에서 충분히 연구만 하고, 개헌이 필요하다는 내부결론이 나면 내년 중반께 공론화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이 문제는 여야의 공감과 합의 없인 성사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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