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진보시대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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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것은 나의 안과 밖에서 명실상부한 ‘진보의 시대’였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주름 속에 숨겨진 상처를 치유한다는 저 비장한 각성들이 진보의 생명수였고, 주류의 행진에 대책 없이 달려들었던 비주류의 모험은 진보의 힘이었다. 과거와의 혁명적 단절을 표명한 이념적 전사들이 이렇게 많이 배출된 시대도 없을 것이다. 동종(同種)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과 이교도(異敎徒)에 대한 증오를 정신의 양식으로 삼았던 세대도 없을 것이다. 분배, 복지, 평화, 인권같이 오랫동안 억압된 단어들이 복원되고, 혐오스러운 고정관념들이 뒤집혔다. 지배집단의 오만한 성곽을 무너뜨릴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각종 불균형에 정의로운 처방을 내릴 때 사람들은 감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위적 방식이 문제였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호명 방식이 문제였다. 민주전사를 자처한 그 배타적 근본주의가 문제였다. ‘교조적 진보’라는 비난 속에 한국 최초의 진보권력은 위태롭게 항해했고, 결국 보수 역풍에 좌초되었다. 진보정치의 두 주역은 사라졌고, 의기충천했던 전사(戰士)들도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소멸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질문은 절박하지만, 답은 모호하다. 진보의 설득력은 빛이 바래고, 사회적 자원은 날로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초기지인 민주당을 봐도 그렇다. 마른 가지를 꽂아도 잎이 날 것 같았던 전성기에 발아한 이념의 포자에 생명의 물을 주는 정치인도 없고, 진보의 21세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사람도 드물다. 보수가 승할수록 진보의 존재도 더불어 유효할진대, 거부권 외에는 가치 증식이 버거운 민주당은 스스로 쇠잔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천도(遷都)에 45조원, 자주국방에 200조원, 농촌 지원에 119조원을 책정했고, 서남해안 일대를 복합레저기지로 만들겠다는 일명 S프로젝트에 50조원을 할당했다. 2009년 12월, 민주당은 4대 강 사업비 6조7000억원 때문에 내년 예산안 자체를 거부했다. 4대 강 사업이 보수정권의 고집이라고 치더라도, 원군을 기다리는 진보의 전선은 그것뿐이 아닐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운명이다’는 행동대장의 유훈(遺訓)을 들었음인가, ‘모든 민주화 세력은 들고 일어나라’는 노회한 진보의 유언(遺言)을 이렇게 집행하고자 함인가, 호전성이라는 전통적 기질에 집착하는 진보의 후예들에게 사람들은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고 진보의 미래전선을 담당할 억척스러운 청년세대가 태어날 것 같지도 않다. 풍요의 시대에 자라나 멋과 개성에 골몰하는 젊은 세대에게 시대의 아픔은 먼 나라의 전설이 되었다. 격화된 경쟁을 달구는 신자유주의의 코드에 자신의 스펙을 맞추기에도 바쁜 그들의 일상에 ‘저항과 전복’은 얼빠진 자의 구호처럼 들릴 뿐인데, 누가 도도한 주류를 거역할 것이며, 누가 시대의 통증을 앓는 황야의 이리처럼 헤맬 것인가? 개발독재의 해독제였던 노동조합은 스스로 독(毒)이 되는 길을 걷고 있으며, 신선한 각성제였던 시민단체는 오랜 관변화의 화려한 과거를 잊지 못해 구슬픈 화류항사(花柳巷辭)를 뇌고 있는 중이다.

그 많던 진보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동면하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던 빛나는 변론들은 왜 독설처럼 들리며, 그들의 논리와 언어는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가? 시대가 궁핍할수록 공명을 확대할 그들의 시그널은 왜 낙오병의 전신부호처럼 나부끼는가? 2009년 12월 29일, 세계의 보편적 추세에 힘입어 보수의 시대가 승승장구할 새로운 십 년대를 며칠 앞둔 오늘, 그렇지 않았으면 공허할 뻔했던 한국 현대사에 유별난 진보의 흔적을 남기고 소멸하는 21세기 첫 십 년대를 나의 40대와 함께 이렇게라도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진지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다. 진보시대여, 안녕!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