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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노르웨이에서 연어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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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노르웨이는 가려면 여객기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하루 가까이 걸리는 먼 나라다. 그래도 우리에게 친숙한 코드가 꽤 많다. 깎아지른 1000m 안팎의 산들이 바다에서 곧바로 치솟은 피오르(협곡)의 장관 외에도 환상적인 북극 오로라, 스키의 발상지, 핸드볼 강국, 노벨평화상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입센의 ‘인형의 집’과 뭉크의 ‘절규’, 그리그의 ‘페그귄트 모음곡’ 같은 예술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근래 한 가지를 더 보태게 됐다. 우리 식생활에 바짝 다가선 연어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이 나라가 포함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4개국과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2006년 발효된 뒤 관세가 내리면서 값도 따라 내렸다. ‘노르게(Norge)’라는 브랜드로 호텔은 물론 대형마트 등을 통해 안방 식탁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훈제연어나 연어초밥이 빠진 뷔페 식당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흔해졌다. 웰빙을 추구하는 요즘 식도락가들은 조리법뿐만 아니라 식재료 자체에도 관심이 많다. 이에 최근 빈번하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 노르웨이산 연어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피오르와 함께 하는 노르웨이 연어 기행을 떠났다.

베르겐·트롬소(노르웨이)=홍승일 기자
사진=민희기 사진작가(‘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물고기도 스트레스 받지 않아야 맛있어

‘북극의 파리’라는 미항(美港) 트롬소에서 동쪽으로 160㎞쯤 떨어진 셰르뵈이라는 작은 항구도시를 어렵사리 찾아갔다. 노르웨이 2위 연어 양식업체인 레로이오로라를 탐방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수산업자가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조차 잘 찾지 않는 오지다. 밴 승용차에 오른 채로 두 번이나 페리를 갈아타면서 세 시간 가까이 걸린 험로였지만 끊임없이 펼쳐진 기막힌 피오르 전경 덕분에 지루한 줄 몰랐다.

해상 양식장과 해변의 가공공장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스트레스 관리’다. 종업원이 아니라 연어의 스트레스다. 연어를 키우고 죽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카트리나 엥거 품질관리부장은 “살아있는 연어를 운반하거나 도살할 때 부담을 주면 피가 한꺼번에 몸통에 몰리고 긴장하면서 육질이 퍽퍽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도시 북쪽 핀마크의 민물에서 기른 60여g 무게의 치어(연어 새끼)는 양식을 통해 어른이 될 때까지 서너 번 서식지를 옮긴다. 이때마다 가급적 그물 대신 진공펌프를 쓰는 건 연어에게 겁을 덜 주기 위해서다. 쾌속정을 타고 해변 공장에서 30분쯤 떨어진 피오르 청정지역 양식장에 가봤다. 쿠르트 에이나르 칼렌 공장장은 “14개의 둥근 철제 그물의 가두리 양식장에선 해류의 흐름과 바닷물의 산성 농도·온도·산소 함유량 등을 컴퓨터로 정밀하게 체크한다”고 말했다. 배가 고픈 것도, 너무 부른 것도 다 스트레스라 영양 상태와 사료의 양을 면밀히 조절한다. 자연과 근접한 환경을 조성하려면 웬만한 경우 아니면 사람이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 좋다. 도살되기 전의 대기실 격인 ‘웨이팅 케이지(waiting cage)’ 단계와 도살 직전 단계가 스트레스와 관련해 가장 결정적이다. 펄떡이는 연어를 가공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로 밀어 넣자마자 망치 같은 자동기기가 연어의 머리를 때려 혼절시킨 뒤 곧바로 날카로운 침으로 아가미 부근의 급소를 찔러 단번에 숨을 끊는다.

1 노르웨이 북부 피오르 연안 레로이오로라 사의 대형 바다 양식장. 2 훈제연어와 소금과 양념에 절인 연어 그라블락스에 오렌지 콩피를 곁들였다. 오슬로에 있는 스칼라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대표적인 연어요리. 3 노르웨이 산 연어의 싱싱한 빛깔. 일본 등 동양사람들은 붉으스름한 색깔이 짙은 연어 살을 좋아한다.

항생제 안 써 … 국가별 식습관에 맞는 메뉴 개발

노르웨이는 지난해 60만t의 연어를 생산해 베르겐항 등을 통해 90% 이상을 해외에 수출했다. 단연 세계 최대 연어 수출국이다. 연어를 기르기 좋은 차갑고 청정한 바다가 2000㎞ 피오르를 따라 널려 있는데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이처럼 스트레스 관리까지 하는 바람에 최고 품질의 명성을 얻었다. 연어는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한 웰빙 식품으로 꼽힌다. 노르웨이산은 특히 노화방지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3 성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들어 연어를 부쩍 많이 먹기 시작했다. 훈제나 구이·초밥·샐러드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근래 스테이크·말이·알밥이나 성탄절용 파피요트 등 조리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수도 오슬로 번화가의 일류 호텔인 톤호텔오페라의 스칼라 레스토랑 주방장의 말을 들어보자.

“노르웨이 훈제연어는 크렘 프레시나 붉은 양파에 곁들여 먹는 것이 좋아요. 가정집에서 먹을 때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닭고기 굽듯 오븐에 익혀 먹어도 훌륭합니다. 좀 성의를 보이면 마늘·피망 같은 걸 넣어 향을 더한 뒤 감자와 사워크림·오이를 곁들이면 좋고요. 정부는 연어를 국가적인 전략 수출품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연어버거·연어피자·연어케밥처럼 각국의 전통 식습관에 맞는 메뉴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지요.”

로포텐 제도 등 노르웨이 인근해는 연어뿐 아니라 대구·넙치·송어·청어·고등어 등 주요 어종의 보고다. 노르웨이산 해산물의 요리법이 궁금하면 노르웨이수산물수출협회의 웹사이트(www.seafoodfromnorway.com)를 참고하면 된다.

TIP ‘북극의 파리’ 트롬소

노르웨이의 트롬소는 북위 70도에 가까운 북극권 최대의 항구 도시다. 동화에 나오는 시가지 모습을 연상케 하고 피오르와 조화가 아름다워 ‘북극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계 최북단 대학, 세계 최북단 맥주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고, 겨울·눈·오로라 등을 형상화한 현대식 ‘북극교회’가 명물로 꼽힌다. 북극권 지역이지만 유럽의 서안해양성 기후로 인해 겨울 날씨가 온화한 편이다.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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