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신뢰회복이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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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계 파업 여파가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금융노조가 또 파업을 벌인다고 하는 등 사회 각 계층의 갈등이 분출돼 나라가 어수선하고 민심이 흉흉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부의 무력과 통치의 부재(不在)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김대중 대통령도 최근 내각을 질책하는 등 정부를 다잡으려 부심하고 있으나 그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 고위층과 주요 장관들의 잦은 말바꾸기·정책변경, 그리고 정부의 이중성(二重性)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전에는 은행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르겠다던 재정경제부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은행 합병을 외치고, 그래놓고도 국민의 정부에서는 관치(官治)금융은 없다는 씨알 먹히지 않는 말만 되뇌고 있다.

편중인사에 대한 비판에는 아예 귀를 막은 것처럼 줄줄이 낙하산인사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정부측은 고위직 비율이 어떻고 하면서 균형인사를 주장한다. 철석같던 작은 정부의 약속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간 데가 없다. 정부 조직이나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안하면서 남더러 구조조정을 하라고 요구하니 정부 정책이 먹힐 리가 없다.

최근에는 모든 것이 남북 정상회담에 밀려 국내 문제는 소홀하게 다뤄지는 느낌도 없지 않다. 더군다나 일부 과잉 홍보와 앞서 가는 발언들의 횡행으로 가치관이 흔들리는 등의 의구심까지 제기되니 정부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조장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 정부는 초기에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법이나 제도보다는 시민단체나 여론을 동원해 압박하는 포퓰리즘적 방식을 즐겨 활용해 왔다.

그러니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하는 측은 법이나 제도 따위는 우습게 여긴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이익단체들로 하여금 정부의 권위를 능멸케 하는 사태로까지 악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정부의 모든 권한을 대통령이 통섭(統攝)하다 보니 일반 부처들은 제대로 권한 위임을 못받은 채 눈치나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갈등을 대통령과 직접 대면으로 풀려고 하니 모든 부담이나 비판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몰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들은 정부가 개혁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가신그룹들을 기초로 한 구태의연한 구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의 개혁성과 도덕성에서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련이라는 이질적인 세력과의 공조도 내각이 손발을 맞추지 못하는 한 요인일 것이다. 정부가 최근 빚어지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이를 해소하는 방책을 시급히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 쇄신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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