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꼬마천사’ 281명이 모였습니다, 암을 이긴 ‘막강 전사’들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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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을 이겨낸 아이들이 의료진과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구홍회 소아청소년과장, 최한용 병원장, 한사람 건너 성기웅 삼성서울병원 소아암센터장이다. 가운데 모자를 쓴 사람은 개그맨 정준하씨.매년 자발적으로 행사에 참여해 어린이 환자를 격려한다. [최정동 기자]

서원희. 충남 해미중학교 1학년생.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암과 사투를 벌였던 소녀다. 그 아이가 치료를 시작한 지 12년 만에 병원에서 수여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에서 우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네 살 소녀에게 이보다 더 치열한 경기가 있을까. 자신의 몸 속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위협하던 암이었다. 의료진은 드디어 원희의 손을 들어줬다. 암을 완전히 몰아냈다는 완치 판정이었다. 단상에 오르는 원희의 눈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완치를 축하한다”며 의사 선생님이 금메달을 원희의 목에 걸어주자 엄마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소아 백혈병 완치율 68%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난 21일, 삼성서울병원에선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암이 완치됐거나 치료가 종결된 아이 의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자리다. ‘참사랑 송년 완치 잔치’엔 모두 281명의 ‘꼬마 전사’가 참석했다. 1999년에 암 치료를 종결하고 10년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완치자 48명, 2004년 완치 판정을 받은 94명, 올해 암 치료가 종결된 어린이 139명이다.

행사를 준비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구홍회 교수는 “소아암은 더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암 환자와 가족에게 암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소아암 완치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완치로 판단되는 ‘5년 생존율’이 72%를 넘는다. 이는 미국 79.5%, 일본의 68.2%와 큰 차이가 없다. 특히 5대 암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백혈병은 완치율이 68.1%를 기록해(2003~2007년 평균) 15년 전에 비해 21.2%p나 상승했다.

삼성서울병원 성기웅 소아암센터장은 “골수·제대혈은행 등 소아암 치료에 필요한 기반기술이 발달해 치료 성적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며 “정부 지원도 강화돼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례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어른도 힘들다는 항암치료 이겨내

원희는 만 두 살 때 처음으로 ‘조직구증식증’에 걸린 것을 알았다. 인체 조직 속에 있는 면역세포인 조직구가 과도하게 증식해 뼈와 피부 조직을 파괴하는 희귀암이다.

“청천 날벼락이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오로지 애만은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원희 어머니 노상숙(45)씨는 12년 전 당시를 떠올렸다. 노씨는 원희가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12년이 걸린 것을 본인 탓이라고 생각한다. 피부에 피가 응고돼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한동안 피부과만 찾아다녔던 것. 노씨는 “머리가 다 빠지고 어른들도 힘들다는 항암제 치료를 잘 견뎌내는 모습이 대견했다”며 “훗날 완치되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참석한 암 완치자들은 한결같이 원희 가족처럼 암 극복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올이 부모님은 올이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엄마 김씨는 “올은 히브리어로 빛이라는 뜻”이라며 “올이가 이름처럼 어두운 곳을 비춰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김한나(19)양은 완치자를 대표해 축하의 글을 낭독할 때도 유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지만 긍정적 성격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암 판정 후 6개월 동안 골수 제공자를 찾지 못해 제대혈이식을 받았고, 결국 완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암 치료가 종결된 현올이(5·남)는 35개월 되던 지난해 4월 ‘수모세포종(뇌종양 중 하나)’으로 진단받았다. 올이의 소뇌 부위에는 약 4㎝의 암 덩어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당시를 떠올린 올이 엄마 김인아(37)씨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암 덩어리 때문에 뇌압이 높았던 올이는 곧바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1년여의 치료를 잘 견딘 올이는 결국 치료종결 판정을 받아냈다. 김씨는 “수술 후 호흡 정지가 일어나는 등 고비도 있었지만 이겨냈다”며 “스스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보여준 올이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0년, 희망을 노래하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완치자와 가족은 2010년 새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다. 감내하기 힘든 병마와 사투를 벌여서일까, 하나같이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며 살아가겠단다.

원희는 벌써부터 학교에서 봉사상을 쓸어온다. 어머니 노씨 역시 충남 서산에서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어머니 노씨는 “원희가 유아교육을 전공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고등학생인 김한나양은 뉴질랜드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한다. “소아과 의사가 돼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었는데, 의사 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유아교육과에 들어갔어요(웃음).” 그녀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 암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병원생활을 해 완치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황운하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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