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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영산강이 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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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출한 둘째 아들로 잠 못 이루는 가정처럼, 한국 사회는 지금 제1 야당 때문에 걱정이 많다. 제1 야당이 당당하고 성숙해야 정권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제1 야당이 그랬다. 1970년대 말 신민당은 총선 득표율에서 이겨 독재정권에 치명타를 안겼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제1 야당 신민당은 단호한 투쟁으로 87년 민주체제를 열었다. 88년 정권은 노태우가 잡았지만 역사의 목줄은 제1 야당 평민당이 쥐었다. 김대중(DJ)은 단식으로 지방자치제를 이뤄냈다. 김영삼 정권 때 DJ의 제1 야당은 첫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노무현 정권 시절 박근혜의 제1 야당은 좌파의 광풍에 맞서 국가 정체성을 지켜냈다. 정권만큼 역사를 만드는 게 제1 야당이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권의 민주당은 제1 야당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대선·총선에서 지고도 승복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거대 야당 공화당이 ‘100년 전쟁’에서 지고 깨끗이 승복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반대하고 반대하며 또 반대한다. 그들은 서민을 위한다고 목이 쉬도록 외친다. 그런데 값싼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했다. 값싼 고기가 들어오면 더 많은 서민이 먹을 수 있는데도 반대했다. 그저 반대만 한 게 아니다. 촛불 폭력시위대의 앞줄에 서고 국회 개원을 막았다. 촛불이 수그러들자 이번엔 미디어법에 반대했다. 선진국처럼 미디어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뿐인데도 그들은 국회를 난민수용소로 만들고 의원직을 내던졌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했다.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19세기 구한말에 갇혀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반대하고 또 반대한다. 자신들의 정권 때 민주당은 이라크와 아프간에 군대를 보냈다. 그래 놓고는 지금은 아프간 파병에 반대란다. 아프간 전쟁은 알카에다를 보호하는 탈레반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알카에다가 한국인을 죽이고 비행기를 폭파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반대란다.

민주당은 4대 강 사업도 반대한다. 회의장을 점거하고 예산안을 틀어막고 있다. 영산강이 어떤 강인가. 전남 담양호에서 발원하여 전남을 먹여 살리는 민주당의 젖줄 아닌가. 그런 강이 지금 가장 오염된 물이 되어 있다. 오염 정도가 심해 4~6급수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강이 이렇게 된 건 지난 정권 10년의 직무유기다. 그런 강을 살려 2급수로 만들겠다는데, 광주시장·전남지사와 주민들은 찬성하는데, 민주당은 반대란다. 대통령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는 데도 민주당은 대운하란다. 대운하를 하려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터널을 뚫어야 한다. 그런 예산은 1원도 없는데도 대운하란다.

4대 강이 5공의 학원정화법이나 삼청교육 같은 독재정책이라면, 제1 야당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하지만 4대 강 사업은 국토개발이다. 제1 야당은 반대 대신 견제를 칼같이 하는 게 옳다. 예산은 주고 국정감사·시민 제보 등으로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2012년 4대 강 동시 완공’이 마음에 걸리고, 수질오염이 걱정이라면, 당당하게 “영산강은 놔두고 다른 강부터 해보라”고 하면 된다. 그러진 못하면서 ‘대운하’라는 엉성한 논리로 반대한다. 이명박 정권은 허술한 구석이 많다. 공기업은 여전히 방만하고, 구석구석 예산이 새고, 실업대책은 거품이 많고, 빈부격차는 늘고 있다. 제1 야당이 이런 부실을 따져야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 ‘이념형’ 제1 야당 때문에 국민의 실용이 크게 손해를 보고 있다. 영산강이 울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