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추억] 정은배 전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난달 30일 별세한 정은배(鄭恩培.64) 전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는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의 효시(嚆矢)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부인 황연대(黃年代.63)씨와 함께 1975년 '정립(正立)회관' 을 개관해 黃씨가 관장을, 鄭씨가 이사를 맡아 18년간 장애인 재활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벽을 걷어내는 각종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76년 장애인이란 이유로 연세대가 합격을 취소한 의대 수험생 8명을 다시 합격시킨 일이나, 82년 법관임용에서 탈락한 장애인 사법연수원 수료생 4명이 법관에 임용되도록 한데는 이들 부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연금수혜가 장애인들에게 적용토록 한 것도 鄭씨 부부의 공로였다.

장애인 회계사 배준호(裵俊浩.48)씨는 "고인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은 10년쯤은 후퇴했을 것" 이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鄭씨 부부와 함께 싸워 법관에 임용된 박찬(朴燦.44)부천지원 부장판사의 감회도 남다르다.

"고인은 '키가 크고 작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장애인도 신체적 특징만 다를 뿐 똑같은 정상인'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장애인 권익옹호에 매진해 왔죠. " 鄭씨가 장애인 운동에 뛰어들기까지는 '우연' 과 '필연' 이 교차했다.

경기상고 1년에 재학중이던 55년 鄭씨의 앞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한 여학생이 넘어졌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다른 사람의 부축없이 벌떡 일어나 교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당당하게 걸어갔다.

정상인인 鄭씨에게 이 장면은 가슴 깊숙히 각인됐고, 3년간 하교길에서 그 소아마비 여학생을 지켜보다 마침내 프로포즈를 했다.

"상이용사들을 위한 재활촌을 만드는 게 오랫동안 품어온 소원이니 의대나 약대에 진학해 나를 도와달라. "

鄭씨의 말에 감동한 黃씨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한 뒤 鄭씨와 결혼했다. 黃씨가 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을 주도하자 鄭씨도 미련없이 직장(대한펄프)에 사표를 내고 막후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부인이 장애인 운동가로 굵은 족적을 남길수 있도록 외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黃씨는 '장애인의 대모' 로 불리게 됐으며 '황연대 극복상' 까지 제정돼 장애인올림픽마다 폐막식 공식행사로 채택돼 왔다.

하지만 고인의 마지막 길은 순탄치 못했다. 다소 독선적인 그의 일처리 방식은 정립회관 내분을 초래했고, 鄭씨는 내부자 고발로 93년 검찰에 구속됐다.

혐의는 정립회관 사업비 2억여원을 특별판공비조로 유용했다는 것. 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강일(李康一.45.베데스타현악4중주단원)씨는 "鄭씨는 절대 축재를 위해 공금을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며 "빠듯한 예산으로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다 빚어진 불가피한 일이었다" 고 증언했다.

어쨌든 鄭씨는 당시 충격으로 구치소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7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심부전증이 악화돼 눈을 감았다.

평생의 동료이자 짝을 떠나보낸 黃씨는 "남편은 평생을 바친 정립회관에 대해 애증(愛憎)을 동시에 간직한채 세상을 떠났다" 고 안타까워 했다.

강민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