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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운노조 '근로자 채용권' 100여년 만에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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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中),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최봉홍 위원장(左), 한국항만물류협회 곽영욱 회장이 6일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항만노무 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노사정 협약서’를 체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항만 노무 공급에 대한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의 독점권이 100여 년 만에 폐지된다. 이에 따라 항운노조가 사실상 독점공급해 온 항만근로자의 절반가량인 1만1000여 명을 부산.인천 등 전국 항만의 하역회사들이 자율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신분도 일용직에서 상용근로자로 바뀔 전망이다.

이는 1898년 근대식 항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이래 가장 큰 변화다. 지금까지 하역회사들은 2만2000여 전체 항만근로자의 절반만 자체 고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항운노조에 의존해야 했다.

6일 해양수산부와 전국항운노조연맹.항만물류협회 등 항만 관련 노사정 3자는 이 같은 내용의 '항만 노무 공급체제 개혁 노사정 협약안'체결식을 열었다. 협약식엔 해양부 오거돈 장관, 항운노조 최봉홍 위원장, 한국항만물류협회 곽영욱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협약에 따라 부산과 인천지역 항만노무공급권이 연내에 하역회사로 넘어간다. 나머지 지역은 하역업체의 영세성과 항만시설이 현대화되지 못한 여건 등을 감안, 노사정이 노무공급을 공동 관리키로 했다.

◆ 왜 바뀌나=현행 체계는 항운노조가 노동부 허가를 통해 항만물류협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하역회사의 요청이 있으면 일용직으로 근로자들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하역 물량이 불규칙할 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이 체계의 장점이지만 항운노조의 우월적 지위로 부작용도 많았다. 해양부 관계자는 "하역업체들이 업무에 투입할 인력의 규모와 소요 비용 등을 효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며 "항만 하역의 현대화가 늦어지고 인력이 과잉투입되면서 물류비도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노조 지도부의 인사권 독점으로 구조적인 채용비리가 발생해 왔다. 이와 관련, 최근 검찰은 부산.인천의 항운노조 간부들이 채용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공사대금 등 노조의 공금을 빼돌린 사실을 적발해 관련자 23명을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은 현재 울산.포항.제주 등 6개 항운노조 간부의 비리 행위에 대해 추가로 수사를 하고 있다.

◆ 예상되는 효과=해양부는 이번 조치로 항만하역에 투입되는 인력이 30~40% 가량 절감되고 물류비용도 연간 500억원 정도 절감될 것으로 추정했다. 부산과 인천에는 항만 시설 현대화가 촉진되면서 추가로 480억원의 생산성 향상 효과도 예상됐다.

이번 조치는 또 동북아 항만물류 중심지로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오 장관은 "하역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부두를 운용하기 어렵고, 기계화 장비 등을 도입할 때마다 진통을 겪어 왔다"며 "노무공급체제가 개선됨으로써 항만의 운용 효율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항운노조 소속 근로자들은 개별 하역회사 소속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상용화된다. 그러나 일부 노조원들은 상용화 보상금 불충분, 정년보장 불확실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해양부는 이 같은 반발을 고려, 명예퇴직 신청자를 제외하고 전원 재고용키로 했다. 임금도 현 수준을 유지하는 한편 현재의 과잉인력이 해소될 때까지 향후 수년간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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