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nhagen 리포트] “미·중 포커게임에 100국 정상 앉아있기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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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에 환경단체 광고가 걸려 있다. 광고에는 2020년 룰라 브라질 대통령 모습과 함께 “죄송합니다. 기후변화 재앙을 막았어야 하는데 …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코펜하겐 AP=연합뉴스]

19일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코펜하겐 협정이 사실상 구속력이 없는 선언으로 마무리되자 상당수 참여국과 외신들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상 최대의 외교 쇼’가 체면치레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협정을 주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주요국들이 기후변화 위협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기로 했다”고 평가했다. 열대우림 보호, 기술 이전, 지원액 규모 같은 개도국 지원방안이 마련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20일 “많은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며 협약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떨떠름한 분위기다. 당초 EU는 ▶기온상승 상한선 섭씨 2도 ▶2050년까지 1990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50% 감축 ▶선진국의 개도국 기후변화 대응 노력 지원 ▶구속력 있는 합의 도출 등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협정에 포함된 건 기온 상승 상한선과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뿐이었다. 스웨덴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는 “이 합의는 ‘완전한’ 합의가 아니며 현존하는 기후변화 위협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dpa 통신은 이번 회의가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된 것을 확인하는 무대였다“며 EU의 소외를 지적했다. 협정의 관건이 됐던 배출 검증 문제는 결국 오바마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간 양자회담에서 타결됐다. 초안 작성에도 EU는 빠지고 인도·브라질·남아공이 참여했을 뿐이다. dpa는 “미·중이 정치적 포커 게임을 하는 12시간 동안 나머지 100여 국 정부 수반들은 그저 무료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일부 제3세계 국가들은 “전 세계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구속력도 없다”며 협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개도국들의 모임인 G77의 의장 루뭄바 디아핑은 이번 협정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에 비유하며 “이대로라면 아프리카 주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가뭄, 산사태, 해수면 상승 등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경단체들도 ‘실패작’이라며 협정을 비난했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기후변화를 막고 빈국들의 기온상승 대처 노력을 지원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역사적인 배신”이라고 밝혔다.

◆“유엔 의사결정 방식의 한계 드러내”=로이터 통신은 코펜하겐 회의가 유엔이 추구하는 전원합의제 방식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인구 1만2000명의 섬나라 투발루와 미국 등이 만장일치를 이뤄야 하는 유엔의 결정 방식이 회의를 탈선시킬 뻔했다며 “최종 협정문을 결정한 마지막 날 밤 총회는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협정 초안에 일부 국가가 계속 이의를 제기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식사도 거르며 직접 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을 설득해야 했다.

로이터는 총회 방식이 아닌 소수의 주요국이 참여하는 G20이나 주요국포럼(MEF) 같은 형식을 택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과 “일부 국가들만의 합의는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유엔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브라질 등 개도국의 반론을 함께 소개했다.

코펜하겐·서울=강찬수 환경전문기자·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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