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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문학과 건축이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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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건축가 김광수와 소설가 한유주의 만남으로 탄생한 도시 모형. 내러티브도 거의 없는 한씨의 작품 『달로』 『얼음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활자가 도시의 중심이 되면서도 일체 수식이 없는 ‘얼음의 건축’을 표현했다. [건축문화학교 제공]

“숨겨진 계단 사이로/길을 잃은 아이가/계단을 펼쳤다 접으며 아코디언을 켜고/계단은 사람들의 귓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가고//계단은 점점 더 느려져/잠이 든 채 연주되고…”(강성은 시 ‘아름다운 계단’중에서)

문학인 4명과 건축가 4명이 만났다. 2009대한민국건축문화제(22일까지 옛 국군기무사령부)에서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기획한 ‘어디?와 무엇?의 문학과 건축’전(옛 국군기무사령부). 시인 심보선·이준규·강성은씨와 소설가 한유주씨, 그리고 건축가 최욱·김광수·곽희수·함성호씨가 참여한 이 전시는 각기 문단과 건축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온 이들이 장르의 벽을 넘는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소장은 강씨의 시를 읽고 나무로 만든 구조물을 설치했다. 바로 몇 발자국으로 모퉁이를 돌 수 있는 구조물은 축소된 벽이며 모서리며 길이다. 소설가 한유주씨를 만난 건축가 김광수 교수(이화여대·스튜디오 K웍스)는 달로문학관과 도시 설계모형(이득영 특별참여)을 만들었고, 시인 이준규씨를 만난 건축가 최욱 소장(최욱스튜디오)은 시인과 건축가의 만남을 주제로 한 비디오 작품(김인철 특별참여)을 완성했다. 건축가와 시인이 각자 추억이 있는 공간을 함께 누비며 소통하는 모습이다.

함성호씨(건축디자인실험집단 EON 대표)는 기획의도에 대해 “건축과 문학이 서로 색다른 언어를 만나 확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두 장르의 충돌과 파장을 일으켜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문학인과 건축가의 만남을 주선한 뒤 미디어·퍼포먼스·낭독 등 형식의 제한 없이 ‘사고하지 말고 반응할 것, 창조하지 말고 연결할 것’이라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했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 건축가로 참여한 함씨는 시인 심보선씨의 시가 적힌 종이를 가위로 잘라 공간적으로 변형시킨 작품을 선보였다. 소설가 편혜영씨와 건축가 공철 소장(Kc건축연구소)도 함께 작품을 만들었지만 전시실 규모가 작아 일반에 공개하지는 못했다.

곽 소장은 “시인의 섬세한 감정을 건축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됐다”며 “다양한 장소,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도시에 시(詩)를 입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4~6시에는 시인·소설가들의 작품 낭독회도 열린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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