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중국 정상회담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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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총비서가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장쩌민(江澤民)주석과 회담했다는 보도는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이나 북한 어느쪽도 북.중 정상회담에 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일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북.중 정상 회동이 시기적으로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고,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끌 만하다. 따라서 13년 만에 이뤄진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 방문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됐을 것인지, 그것이 남북 정상회담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가 주목된다.

아마도 중국측이 가장 신경쓰는 대목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일 것이다. 최근 미국 합참은 미국의 세계전략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으며 중국을 주(主)적대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조인트 비전 2000' 이란 이름의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을 '포위' 하기 위해 일본 및 한국에서의 미국 주둔군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이 자위(自衛)권역을 동아시아 일대로 확대하는 '가이드 라인' 입법을 허용했으며 북한의 미사일을 핑계로 전역미사일방위(TMD)의 구축을 일본과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측으로서는 북한이 공연히 미국을 자극할 핵이나 생화학무기.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의 개발 자제를 요구하고 대신 북한에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촉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북한 정권의 안정을 위해 중국.대만의 관계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식 공존관계를 중국이 보증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개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경제.외교적 지원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미국-일본 축(軸)속에 있는 한국과 중국 축 위에 있는 북한을 새롭게 편가르기하는 신(新)냉전체제로 발전해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낼 수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이 대량 파괴무기를 의제로 삼을 것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해오고 있는 데서도 아시아 질서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은 따라서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큰 방향에서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봐야 한다.

차제에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신냉전체제식 편가르기에서 남북은 한반도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야 하며 동북아 문제의 핵심 변수인 한반도 문제를 '우리의 문제' 로 가져오는, 보다 넓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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