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벤처로 간 기업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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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깨나 했다고 자부해 왔는데 솔직히 이곳이 더 힘듭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자유기업원에서 허브포털 기업인 인티즌으로 옮긴 공병호 사장은 2개월 동안의 벤처 경험담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기존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는 孔사장은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 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전직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료는 물론 전통 제조업체의 대표 주자까지 대거 벤처로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이미 성공했거나 성공을 예약한 사람도 있지만 좌절을 맛보고 자리를 옮긴 이들도 있다.

◇ 능력껏 신나게 일한다〓대우그룹 부사장을 그만두고 벤처 홍보 대행사인 SPR를 차린 서재경 사장은 "대기업들이 오너 중심이라면 벤처는 직원 모두가 주인인 경영체제" 라며 "벤처는 개인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보상체제가 확실하다" 고 말했다.

인티즌 孔사장은 모든 의사소통이 e-메일로 이뤄지는 완벽한 온라인화를 강점으로 꼽았다.

孔사장은 "미래 소비자인 젊은이에 대한 이해 없이 벤처기업을 경영하기는 힘들다" 면서 "계급이 따로 없는 수평적인 조직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이 강점" 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국장에서 메디슨으로 옮긴 이홍규 부사장은 다이내믹하고, 배울 점이 많으며, 정보가 빨리 전달되는 점을 벤처의 강점으로 꼽았다.

벤처 홍보.광고 전문회사인 온앤오프를 창업한 구본룡 전 산업자원부 국장은 "노력하고 일한 만큼 실적이 오르고, 이를 곧바로 직원에게 보상해줄 수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생활이 즐겁다" 면서 "20여년의 관료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희열을 느낀다" 고 말했다.

삼성물산에서 인터넷 경매회사인 옥션으로 옮긴 배동철 이사는 "복잡한 결재 과정도 없고 개인의 적성과 능력.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어 좋다" 고 말했다.

◇ 사생활이 없다〓 "정말 치열하고 빠르고 긴박하게 돌아간다(so hot, so fast, so tight)."

인티즌 孔사장은 벤처기업이 할 일이 많고 의사결정이 빠르며 업무 강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사회문제를 놓고 고민할 시간이 없고 가족.친구 등 가까운 사람과 유대관계가 소홀해지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옥션 裵이사는 "공휴일이나 휴가도 없이 일해야 한다" 면서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 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서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퇴직할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벤처기업은 회사의 장래에 대해 항상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디슨 李부사장은 "관료 시절 국가와 나라 경제를 염두에 두고 일했는데 지금은 연관된 기업만을 생각한다" 면서 "너무 바빠 피곤하다" 고 말했다.

SPR 徐사장은 기업가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월급쟁이가 느끼는 강도와 종류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徐사장은 "소수의 조직원들이 짧은 시간에 의사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졸속으로 사업을 판단하거나 경험이 적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고 말했다.

온앤오프의 具회장은 입사와 퇴사가 너무 자유로워 조직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삼성SDS를 나와 온라인 게임업체 한게임을 차린 김범수 사장은 "대기업처럼 체계적이지 않아 조직을 관리하기가 힘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자본을 끌어들이기도 쉽지 않다" 고 말했다.

◇ 그래도 벤처로 간다〓벤처거품론이 확산되고 코스닥 주가가 급락했지만 관료와 직장인의 벤처행은 계속되고 있다.

산업자원부 강순곤 수송기계과장이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인 KCTech 경영기획실장으로, 권용원 산업기술개발과장이 다우기술 부사장으로 옮겼으며 박용찬 전자상거래과장은 벤처기업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다.

정보통신부 강문석 지식기반과장은 삼보컴퓨터 중국지사장으로 변신했다.

재정경제부 우병익 은행제도과장은 벤처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사표를 냈으며, 기술정보과 박승원 사무관은 이달 초 TV넷으로 옮겼다.

대기업에선 삼성전자 임수길 과장이 인터넷 TV 네트웍스로, 허재영 과장이 벤처인 에이블 팀장으로 옮겼다. 삼성SDI 배정국 부장은 드림라인으로 갔다.

대우중공업 김치석 차장과 이동영 과장은 이달 말 10여명의 대기업 홍보 전문가를 모아 'PR하우스' 라는 벤처기업 홍보 컨설팅 대행사를 차린다.

김동섭.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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