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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대치 상징인 대만 진먼다오, 대륙 관광객 몰리는 명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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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쩡둥이 3일 오후 주방용 칼을 만들려고 포탄에서 잘라낸 쇳덩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왼쪽). 중국 관광객이 해안가에 설치한 디치(목책)를 둘러보고 있다. 진먼다오=이양수 기자

중국과 대만이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항공편으로 한 시간 거리인 진먼다오(金門島). 인구 5만 명의 이 조그만 섬(면적 134㎢)은 1990년대 중반까지 양안(중국·대만) 대치의 최전선이었다. 한때 10만 명의 대만 병력이 주둔하고 중국은 1949년부터 30년간 100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총 823회의 포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진먼다오는 요즘 군사도시에서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 2일 진먼다오행(行) 여객기에서 만난 차이(蔡·48)는 “진먼 북쪽에서 중국 샤먼(廈門) 남쪽까지 6㎞밖에 되지 않아 헤엄쳐 갈 수도 있다”며 “지금은 군인들도 떠나고 경기가 아주 나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진먼다오는 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진먼다오의 명소 중에는 포탄 탄피로 50여 가지의 도검(刀劍:칼과 검)을 만드는 진허리강다오(金合利鋼刀)라는 업체가 있다. 그곳의 총책임자인 우쩡둥(吳增東·51)은 30년 넘게 도검을 만든 명장(名匠)이다. 3대(代)째다.

지난 3일 오후 이 업체를 찾았을 때 그는 불발탄 탄피로 부엌칼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포격전 당시 날마다 비 오듯 포탄이 쏟아져 섬 곳곳에 불발탄 탄피가 쌓여 있었다. 그에 착안해 96년부터 탄피로 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m 크기의 불발탄이면 60여 개의 칼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설명과 함께 불발탄 하나를 집어 손바닥 절반 크기로 쇳덩이를 잘라내더니 불가마 속에 집어넣었다. 2∼3분간 뻘겋게 달군 쇠를 능숙하게 자동 해머로 납작하게 펴 칼 모양을 냈다. 그 뒤 다시 달구고 펴고 두드리고 가는 과정을 거쳐 날이 시퍼런 30cm가량의 식칼을 만들어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만든 칼은 하나에 3만∼10만원에 팔린다. 우쩡둥은 “무술용 검 1세트(2개)를 4만8000타이비(台幣:약 190만원)에 판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요즘 양안 화해의 기류를 실감한다. “하루 100여 명의 대륙 관광객이 오는데 선물용으로 10세트를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매출액을 묻는 질문에 부인 훙슈누안(洪秀暖)은 “연 2000만 타이비(약 8억원)를 조금 넘는다”고 답했다. 대륙에서 쏜 포탄이 주방용 칼로 변신해 되돌아가는 셈이다. 우씨는 “포탄용 강철은 일반 강철보다 훨씬 단단해 고급요리용 칼을 만드는 재료로는 그만”이라고 강조했다.

화해와 번영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진먼다오 곳곳에서 느껴졌다. 49년 10월 중·대만이 격전을 벌인 구닝터우(古寧頭)근처의 난산춘(南山村)입구에는 ‘평화광장’이 있었다. 물을 뿜는 분수대의 양쪽에서 용 두 마리가 큰 여의주를 함께 물고 있는 장면에는 ‘공동 번영’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중국의 무력침공에 대비해 파놓은 해안 지하요새, 디치(목책), 토치카(해안벙커), 대공포 진지는 관광자원이 됐다.

양안 협력 노선을 택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지난해 5월 집권한 이후 대만은 ‘차이나 파워’를 활용해 제2의 경제도약을 꿈꾸고 있다. 대륙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코스인 진먼다오와 고궁박물관, 아리산(阿里山), 일월담(日月潭)에는 하루 6000여 명의 대륙인이 몰려들고 있다. 4일 고궁박물관에서 만난 가오보(高波·39세)는 “중국 취안저우(泉州)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하는데 친구들과 함께 4박5일 코스로 3000위안(약 54만원)을 내고 왔다”며 “선박 편으로 진먼다오, 항공 편으로 타이베이에 와 내일은 고속전철을 타고 가오슝(高雄)으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대만엔 50만 명의 대륙 관광객이 방문했다. 이들이 쓴 돈은 총 6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양안 협력은 무역·금융·투자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가오쿵롄(高孔廉) 대만해협교류기금회 서기장은 “8월 말부터 항공편 운항 횟수가 주 280편으로 늘어난 데 이어 각종 협정이 체결되면 협력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양안 경제협력기본합의서(ECFA)가 내년 봄 체결되면 관세 분야에서만 대만이 약 78억 달러(약 9조원)의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분) 원칙을 수용하는 대가 중 하나다.

단치(單驥) 행정원 경제건설위 부주임의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그는 “경제발전과 일자리, 기술혁신 등을 위해 대륙 시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ECFA 체결 시 성장률은 2∼3%포인트 더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의 성장률은 4분기에 6.9%를 기록했다. 내년엔 4.4%(올해 추정치 0.9%)로 오를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태풍 모라꼿이 대만 섬을 강타하자 조립주택 1000동을 지을 건축자재를 보내줬다. 이와 별도로 9억6000만 위안(약 1800억원)의 현금 지원을 약속해 지금까지 1억5000만 위안을 집행했다. 중국판 햇볕정책을 상징한다.

하지만 대만 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선(先) 경제통합, 후(後) 정치통합의 단계를 거쳐 대만을 병합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12·5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패배한 원인 중 하나로 급속한 양안 협력에 따른 불안감이 꼽힌다. 전략문제 전문가인 린중빈(林中斌) 단장(淡江)대학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 ‘나는 대만인’이라는 응답이 92년 16.7%에서 올해 44.4%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나는 중국인’은 9.4%, ‘대만인이면서 중국인’은 42%) 그러면서 조셉 나이가 말한 ‘경제는 하드파워’라는 명제를 인용했다. “베이징이 스마일 작전으로 대만에 현찰과 선물을 안겨주면 독립의식은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상하이에서 무역업을 하는 신디아 류(35·여)는 “중국 생활을 오래할수록 민주·인권·부패·환경 같은 문제들을 더 생각하게 된다”며 “중국과의 통일은 멀고 먼 미래의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륙 출신 부친과 대만 출신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2300만 대만인들이 훈풍으로 변한 대륙풍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우리에게도 관심거리다. 중국 통일과 남북한 통일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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