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목욕차로 어르신 씻겨 드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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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효녀가수' 현숙은 부모님을 잃고 한동안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노래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음은 중앙SUNDAY 칼럼 전문.

오늘도 지방 공연을 했습니다. 전 하루에도 서너 도시를 다니곤 합니다. 다른 가수 닷새 일정을 하루에 한다네요.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 하려고 해~.” “그 돈 다 벌어 누구 주려고?” 뭐 하려고 하기는요. 제가 열심히 공연을 다니면 제 노래가 더 많이 알려지겠지요. 곡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요.

일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내가 할 것이 있고, 갈 곳이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공허할까요.

일이 없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댄스 음악이 유행하던 1990년대 초중반 누구도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때 많은 것을 배웠지요. 96년 ‘요즘 여자 요즘 남자’로 재기했습니다. 그해 방송의 날에 방송대상을 받았지요. 이후 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신곡을 발표했습니다. 일단은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계속 신곡을 내다보면 사라지는 곡도 많겠지만 히트곡도 나올 거라고.

5년에 신곡 한 번 내기 힘든 가수도 많습니다. 매년 노래를 발표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요. 2~3년만 활동하고 사라지는 가수도 많습니다. 30년 동안 노래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호롱불 밑에서 글을 읽고 30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가던 제가 지금은 외국 공연도 가고 방송 무대에도 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소녀시대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거리에서 “현숙씨 아니에요?” 물어보시면 “예! 맞아요! 안녕하세요~.” 얼른 인사를 건넵니다. 저를 알아봐주시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일을 하면서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느라 늘 잠이 모자랐습니다. 낮에는 형제들이 밤에는 제가 맡아서 간병을 했거든요. 밤에는 부모님 곁에서 새우잠을 자고 낮에 잠깐씩 토끼잠을 자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일이 없어서 뒹굴뒹굴 했다면 그 소중한 잠도 고마운 걸 몰랐겠죠. 부족해야 행복한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2007년 ‘우리 예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몸이 아파서 일을 좀 쉬었더랬습니다. 새벽 4시까지 기저귀를 갈아드리던 생활이 끝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더 잘해 드릴 수 있었는데….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엄마·아빠가 남기신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밤에는 와인을 마시며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지냈습니다. 8㎏이 쪘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했습니다. 만보기부터 마련했습니다. 밤 11시에 1시간 동안 아파트 10바퀴를 돕니다. 요즘은 제가 살이 빠졌다고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밤 운동을 따라 나서시네요.

이젠 엄마를 목욕시켜 드릴 수 없으니까 목욕탕에 가서 어르신들 등을 밀어드립니다. 1년에 한 번은 이동 목욕차를 끌고 나섭니다. 어르신들을 씻겨드리면서 제 마음이 밝아집니다. 제가 행복해집니다.

부모님의 빈자리가 크지만 더 열심히 일하고 나누고 씩씩하게 삽니다. 부자라야 나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미용하시는 분은 머리 모양을 멋지게 손질해 주시고, 주부시라면 이웃에게 반찬을 나눠 주시면 되지요. 현숙은 노래를 나눠 드립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현 숙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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