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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찾아서] 9.담양 소쇄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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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외국에 나가봤더니 정원이 정말 아름답더란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잘 가꿔진 수목.화초와 분수들, 기하학적 배치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얘기다. 요즘엔 국내에서도 유럽을 방불케하는 정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연하게 그런 조경은 우리의 전통양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아가 우리의 전통조경도 곱씹어볼수록 맛이 우러난다. 담양 소쇄원(瀟灑園)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소쇄원은 대표적인 별서(別墅-산수가 좋은 곳에 마련한 일종의 별장)다. 스승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된 후 결국 죽음을 당하자 양산보(梁山甫)가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고향에 지은 것이다. 4백60여 년 전의 일이다.

전통조경의 핵심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인공의 것을 가미하더라도 이를 자연과 어울리게 한다. 조경 구성의 핵심원리는 '인차(因借)' 다. 지세.지형, 주어진 공간적 여건을 잘 활용하고(因), 건물과 조경물을 안배하는데 위치뿐 아니라 계절 등의 시간적 고려까지 하는 것(借)이다.

소쇄원도 이런 조경원리에 따라 어떤 위치, 어떤 계절에 보아도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소쇄' 란 말은 '상쾌하고 깨끗하다' 는 의미다. 담장으로 둘러친 소쇄원뿐 아니라 초입의 무성한 왕대 숲에서부터 갖게되는, 바로 그 느낌이다.

소쇄원은 계류(溪流)를 중심으로 한 자연 암반과 양쪽의 정자들, 꽃계단과 연못, 위태롭기까지 한 다리, 그리고 황토흙과 자연석을 섞어 쌓은 긴 담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담장을 둘렀다 해도 남쪽을 틔워놓은 데다 계류가 흘러드는 담밑으로 훤히 구멍을 내어 폐쇄적인 느낌을 주지않는다. 담장 밑을 통해 들어온 계류는 담소(潭沼)와 작은 폭포를 이루며 내려가고, 나무홈통을 따라 오른편 연못으로도 흘러든다.

소쇄원에는 건물이 3채 있다. 맨 위에 자리잡은 제월당과 그 아래쪽 광풍각은 팔작지붕집이고, 계류 반대편 대봉대는 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정(草亭)이다. 자리에 따라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눈맛이 저마다 다르다.

제월당과 광풍각이란 이름은 양산보가 스승이 흠모했던 중국 북송대 학자 주돈이의 인물됨을 표현한 황정견의 글귀-비갠 뒤 해가 비치며 부는 바람과 맑은 하늘의 달빛같다(如光風霽月)-에서 따온 것. 대봉(待鳳)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봉황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있으면서 스승을 기리고 자신을 경계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의 뜻이 당호(堂號)에도 배어있다.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된 후 17세기초 중수된 소쇄원의 옛모습은 18세기 중반 목판으로 판각된 '소쇄원도' 를 통해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지금도 옛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장 큰 이유가 양산보의 후손들이 '절대로 팔지말고 상함이 없게 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 는 유훈을 대대로 지켜 내려왔기 때문이란 점을 생각할 때 '가문' 이란 단어의 무게가 느껴진다.

글.사진〓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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