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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북한… 지금 변화중] 10. 주민살림 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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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1997년 8월 북한을 탈출한 김길선(46)씨는 지금도 '소금'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찡그린다.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7반14호 아파트에 살 때 '김장철 소금 고생' 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金씨는 "소금이 어찌나 부족한지 한집에서 배추를 절인 소금물로 아파트 전체가 돌려가며 배추를 절쿠어야 했다" 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요즘 평양 시민들은 소금 걱정을 조금 던 것 같다. 김정일(金正日)총비서가 직접 나서 소금문제를 챙기기 때문이다.

金총비서는 군부 기반을 배경으로 체제 불안정을 털고 주민형편에 신경쓸 여력이 생긴 것 같다.

98년 10월 함경남도에 '광명성제염소' 를 건설한 북한은 11월에는 함북 청진에 '충성의 청진정제소금공장' 을 세웠다. 또 강원도 천내군과 황해도 연안군에도 소금공장을 잇따라 건설했다.

청진공장에는 유엔 무상자금 39만달러가 들어갔다. 96년 4천만달러였던 유엔의 대북지원 규모는 지난해 2억9천만달러로 늘어나는 등 외부지원이 경제 주름살을 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북한은 80년대 중반부터 '8.3인민소비품 증산운동' 을 전개해 왔고 80년대 말 '경공업혁명', 93년 12월 '경공업제일주의' 방침을 채택했으나 최근 경제 내리막길에서 경공업 분야는 가장 뒷전으로 나앉았다. '고난의 행군' 상황에서 기간산업만이라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금속.화학.기계 같은 중공업 분야는 노동당이 직접 챙기는 반면 생필품은 군(郡)단위로 20여개씩 있는 지방공장에 떠맡겼다. 식료품.음료.신발.의류 등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다.

그나마 원자재 부족에 전력난마저 겹치는 통에 생필품 공급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주민형편이 98년에 바닥을 치고 다소 나아지는 조짐이다.

지난해 4월 북한을 돌아본 캐서린 버티니 세계식량계획(WFP)사무총장도 "전반적으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고 밝혔다.

평양방송도 지난해 7월 27일 생필품을 생산하는 4천여개의 지방산업공장이 가동 중이라고 모처럼 보도했다.

놀고 있던 지방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재가 시.군마다 개설된 농민시장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생필품의 80%, 식량의 60%가 농민시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통일부 추산을 감안하면 농민시장의 활기를 짐작할 만하다.

농민시장에서는 과거 통제 품목이던 입쌀.강냉이를 비롯해 소금.사탕.과자.콩기름.술.쇠고기.두부.빵.국수.마른 생선.마늘.고추 등 식품류가 광범하게 거래된다.

한 탈북자에 따르면 황해도 해주의 농민시장에선 옷감.내의.이불장.양복장.자전거.TV.녹음기 등도 거래된다고 한다.

다른 탈북자들은 주민들이 규제품목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품목과 가격을 적은 명세서나 샘플만 가지고 거래에 나선다고 전한다. 농민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와 완화가 되풀이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당국의 생활경제에 대한 관심은 노동신문 1월 28일자 1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안주상업관리소.만경대종합식당 등에서 곡물과 육류제품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주민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신년 사설이 "경공업혁명의 불길을 더 높여 인민소비품 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을 가져와야 한다" 고 의지를 다진 이래 이런 유의 기사가 늘고 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국회)는 올해 경공업 예산을 전년 대비 4%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북한 당국은 요즘 양어장 건설, 토끼.염소 사육, 뽕밭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金총비서가 당.정.군 가릴 것 없이 모든 기관에 양어장 건설에 나설 것을 지시한 뒤 물있는 곳마다 양어장 열풍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열대메기.칠색송어.잉어 양식을 권장하고 있는데서 주민들에게 단백질 공급을 늘리려는 고충이 엿보인다.

경공업 제품의 생산전문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이병림 경공업성 부상은 지난해 8월 13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뷰에서 "21세기를 앞둔 오늘 우리나라에서 경공업제품의 생산전문화는 중요한 문제" 라며 "인민소비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을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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