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과밀 장관진퇴로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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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엊그제 건설교통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건교부장관은 진퇴를 걸고 수도권 과밀억제를 위한 획기적 조치를 취하라" 고 지시했다.

전국의 12% 면적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전체인구의 66%가 몰려 있는 수도권 과밀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거듭된 시책과 구호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 개발로 수도권 과밀현상은 날로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수도권 인구과밀은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위험하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며 정부가 주창하는 지방화시대에도 역행한다. 따라서 관계장관들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다그침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도권 과밀문제가 어느 한 두 장관이 직(職)을 건다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金대통령도 "총리를 중심으로 건교부.행정자치부 등 관련부처가 내각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 고 부연했었다.

오늘의 수도권 과밀은 정부정책의 실패와 투기수요.개발업자의 이기(利己)등이 '서울집중화' 와 서로 얽히고 설킨 사회경제적 산물이다.

따라서 장관이 아닌 대통령이 직을 걸고서라도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갖고 해결에 임해야 할 사안이다.

관계장관이 진퇴를 걸고 대들 경우 과격하고 졸속한 대책들이 나오기 십상이다.

보고용이나 이벤트성에 치우칠 우려도 있다.

대통령이 주무장관에게 직을 걸고 해결을 지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제대로 된 문제인식과 그 해결을 위한 단호한 의지표명은 국민 입장에서 속시원하고, 또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빚어지는 국정의 무리수와 부작용 또한 경계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할 일이 있고, 수도권 과밀억제와 같은 장기적이고 원려(遠慮)를 요하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정부는 지난 35년간 '엄격한 법' 을 내세워 규제 위주로 수도권 정비에 임해 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인천국제공항과 경부고속철도, 무분별한 신도시 건설과 난개발로 수도권 전체를 거대한 국토의 종양으로 키워가고 있다.

현 정부가 한편에서 수도권 지역 그린벨트를 풀면서 다른 한편으로 '과밀해소를 위한 획기적 조치' 를 강조해 병주고 약주는 인상 또한 지울 수 없다.

'획기적인 조치' 에 앞서 그동안의 획일적인 규제가 무질서한 평면적 확장과 교통난 가중, 저부가가치 중심의 산업구조 형성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신도시나 위성 미니도시들은 서울지향형 단순확장을 막고 수도권일수록 새로운 신도시 개발보다는 기존 신도시를 자족도시로 만들어가야 한다.

중앙집권적.계획주의적 방식보다는 분권적.시장주의적 방식으로의 발상 전환도 차제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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