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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아이들 볼에도 홍시 열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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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에선 벼가 익고 논둑에 불을 피운 아이들 앞에선 콩이 익는다. 이른 가을을 맞이한 소똥령엔 모든 풍경이 여유롭기만 하다.

****정과 추억이 한아름, 농촌 체험

벌써 추석이 코앞이다. 여물어가는 곡식이 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남쪽보다 가을을 빨리 맞는 강원도의 들판은 이미 누렇게 물들었다. 황금물결은 야금야금 남으로 영역을 넓혀가리라. 수확을 앞둔 들녘은 넉넉함 그 자체다. 콘크리트에 갇혀 마음이 허해진 도시인들에게 농촌의 넉넉함은 보약이다. 잠자리 불편하고 옷과 몸에 흙이 좀 묻으면 어떤가. 달이 차듯 시나브로 부푸는 자연의 풍성함을 마음에 담고 올 수만 있다면. 그래서인지 '체험'이란 이름을 걸고 농촌을 찾는 도시인들의 걸음이 잦아졌다. 이번 주 week&은 강원도 고성군 소똥령 마을에서 가을걷이를 앞둔 농촌의 모습을 한아름 담아봤다.

고성=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다양한 작물, 체험도 풍성=진부령 정상에서 10㎞쯤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분지에 마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32가구 95명이 논밭 모두 합쳐 21㏊를 경작하며 사는 소똥령 마을(고성군 간성읍 장신2리)이다.

소똥령이란 이름부터 정겹다. 고성에서 원통장에 가려면 이 마을 앞산을 넘어야 하는데 팔려가는 소들이 고갯마루 주막 앞에 똥을 하도 많이 누어 향토색 진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진부령 국도가 뚫려 이젠 쓸모 없어진 숲길엔 아직도 사람 발길로 다져진 오솔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똥령 트레킹은 이 마을의 체험 프로그램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코스다.

간성으로 뻗어가는 46번 국도에 착 달라붙어 있는 장신천을 건너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펜션 같은 현대식 건물들이 먼저 눈에 띈다. 대부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주거 개선 사업을 겸해 만들어진 민박집이다. 농가의 전통적인 맛을 기대하고 찾은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덕분에 욕실과 화장실의 불편함은 사라져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한다고 한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경작지가 넓지는 않지만 벼농사는 물론이고 머루.고추.콩.깨 .밤.배.옥수수.감자 등 경작하는 작물은 다양하다. 게다가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장신천 계곡엔 산천어가 많고 뒷산엔 도토리와 산나물이 지천이다. 덕분에 사시사철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송이 천지=소똥령 마을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은 자연산 송이. 1등품 1㎏에 15만원이 넘는다. 뒷산 볕드는 곳엔 어김없이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가마다 독자적인 채취구역이 있어 다른 사람은 접근 금지다.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송이철 동안 주민들은 송이 따는 일 말고도 금줄을 쳐놓은 송이구역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갔다간 한해 농사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똥령 마을 사람들은 고심 끝에 송이 채취도 체험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도시 사람들과 송이 직거래 길을 트기 위해서다. 대신 체험비 2만원씩을 받아 구역 소유주에게 보상해 준다. 체험 참여자가 많이 따더라도 비용을 지불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다. 허탕 쳐도 돈 낸 만큼은 받는다.

우리 먹거리 경험=소똥령의 농촌체험 프로그램은 다소 독특하게 운영된다. 방문객들이 원하는 체험을 신청하면 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분산해 보내준다. 해당 프로그램은 설명에서 작물 제공까지 그 농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수익(체험비 5000원)도 해당 농가 차지다. 산천어 잡기나 소똥령 트레킹, 도토리 줍기 등 특정 농가에 국한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마을에서 당번을 정해 안내한다.

부녀회가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그램도 있다. 도토리 묵.순두부.감자전.머루주.된장.팥죽 등 우리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부녀회의 지도로 직접 만든 음식을 본인이 먹게 되며 재료비와 체험비 명목으로 점심 밥값(5000원)에 2000원을 추가로 받는다. 소똥령을 걸으며 잔뜩 주워온 도토리는 여기서 배운 것을 실습해 보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재료가 된다.

농촌체험 이렇게=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은 모두 562곳. 농업진흥공사 도농교류센터에서 운영하는 농촌관광포털(www.greentour.or.kr)에서 대부분의 마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소똥령 마을(http://sottong.go2vil.org, 033-681-2815)처럼 아직 등재되지 않은 곳도 있다. 초기 단계여서 꽉 짜인 프로그램을 갖춘 마을은 드물다. 계절에 따라 마을에 닥친 농사일에 방문자가 참여하는 형식이다. 시기를 잘못 선택하면 할 일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각 마을에서 행사나 축제를 열 때가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농촌관광포털 첫 페이지에서 이런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체험마을이라지만 관광이 주업이 아닌 만큼 체험자를 위해 일손을 따로 빼야 한다. 예약없이 불쑥 찾는 손님이 반가울 리 없다. 10명 이상 단체 방문을 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행사에서 단체로 체험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소똥령의 경우 하나강산(02-736-7400)에서 추석연휴기간을 이용한 2박3일 상품을 17만8000원에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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