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40년] 흩어지는 '4·19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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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일 오전 4.19 제4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수유동 묘역. 40년 전 4.19 당시 고려대 정외과 4학년이었던 한나라당 박명환(朴明煥)의원의 옆자리엔 지난해 이맘때 함께 했던 '정치동지' 들이 없었다.

같은 과 동기생이자 4.19 당시 정경대 학생위원장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이세기(李世基)의원, 그리고 상대 학생위원장이었던 이기택(李基澤) 전 의원 등이 그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들은 '가족들과 서울 근교행' (이기택), '선거운동 후유증으로 발가락을 다쳐 집에서 치료 중' (이세기)등의 이유로 매년 참석했던 수유동 행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늘 함께 했던 동지들이 없는 오늘 우는 심정으로 꽃을 바쳤다. " (朴의원) 같은 시각 또 한명의 4.19세대인 김중위(金重緯)의원은 한나라당에서 낙선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또한 "심신이 괴로워서" 라며 이날 수유동을 외면했다. 정치권의 4.19세대들에게 새천년 첫 4.19는 이처럼 쓸쓸했다. 16대 총선은 간판급 4.19세대의 몰락을 가져왔다.

특히 이세기 의원과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한나라당 이우재(李佑宰)의원 등은 각각 임종석.장성민(張誠珉)당선자 등 386 정치신인들에게 고배를 마셔 세태 흐름의 희생자가 됐다.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곤 朴의원과 민주당 설송웅(□松雄)당선자 정도.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4.19세대인 박실(朴實) 전 의원.길승흠(吉昇欽)의원은 민주당 공천경쟁에서 탈락, 총선 출마조차 포기했다. 이영일(李榮一)의원은 무소속으로 나갔지만 낙선했다.

숙대 이남영(李南永.정외과)교수는 "기성 정치권을 바꾸자는 국민의 변화 욕구, 인터넷 선거운동 도입 등 디지털 정치시대와의 불화(不和)등이 4.19세대의 몰락을 가져왔다" '며 "3金정치 구축에 일익을 담당한 4.19세대가 거대한 세대교체 흐름을 거스르기엔 역부족" 이라'고 분석했다.

박명환 의원 등 당사자들도 "정치입문 후 수십년을 3金씨 그늘에 묻혀 빛을 보지못한 4.19세대가 정치말년에 386등 신진세력에 밀리게 됐다" 며 아쉬워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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