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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높이자] 양노총 파워게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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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노동계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그 해법을 찾지 못해 노사정이 고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사정(勞使政)위원회의 복원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정위는 아직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노사정 기구는 한국 등 노사정간 협의문화가 뒤떨어진 국가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 상황과 대비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의 노사정 협의기구는 모두 경기가 침체된 시기에 출범, 국가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도 경제와 사회복지를 이끄는 사회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간 '노-노(勞-勞)갈등' 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파업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다.

그러나 정부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중재역할을 해야 할 노사정(勞使政)위원회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오히려 노사정위의 어설픈 '훈수' 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 농.축협 통합〓한국노총 산하 농협중앙회 노조는 농.축협 개혁을 위해 양단체를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산하 축협중앙회 노조와 전국 농협노조 및 축협노조는 "정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밀릴 수 없다" 며 통합을 반대한고 있다.

정부는 17일 농.축협 통합을 위한 협동조합중앙회 설립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었지만 회의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주변은 이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측 시위대로 들끓었다. 민주노총측은 "농.축협 통합이 강행될 경우 심각한 노동계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 이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 부두 파업〓지난 2월 26일 이후 두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우암.신선대 부두 노동자 파업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힘겨루기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노총에 소속된 항운노조는 민주노총측인 운송하역노조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운송하역노조는 지난 2월 11일 법원으로부터 "운송하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사측이 거부해서는 안된다" 는 판결을 얻어냈지만 여전히 회사측은 "복수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 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노무공급권을 독점하고 있는 항운노조의 입장도 회사측과 같다.

급기야 운송하역노조는 2월 25일 태업.파업에 나섰고 지난달에는 고속도로를 화물차량들이 저속주행하는 집단시위를 하기도 했다.

또 운송하역노조와 항운노조는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을 빚어 양측에 부상자가 속출하는가 하면, 항만작업 차질로 수백억원대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 의보 통합〓올 7월로 예정된 의료보험 조직통합에 반대하며 한국노총 산하 직장의료보험 노조가 8일째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19일부터 민주노총 산하 지역의료보험 노조가 의료보험 조직의 완전통합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양대노총이 엇갈린 주장을 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형국이어서 전국 의보행정이 마비상태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직장의보는 의료기관에 지급할 진료비 예탁업무까지 중단, 동네 병.의원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으로 7월 1일부터 의보 통합이 예정된 상태에서 양대 노조가 첨예한 마찰을 빚어 개정 보험료 산출작업 등 일련의 의보통합 준비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 문제점〓노-노 갈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노사정위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노사정위 자체가 노.사.정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손낙구(孫洛龜)교육선전실장은 "노사정위가 합의사항을 뒤집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어서 사실상 현 노사정위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고 혹평했다.

실제로 의료보험 노조의 파업은 1998년 제1기 노사정위에서 합의된 의보 전면통합을 3기인 현 노사정위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1공단 2체제 형태의 한시적 분리운영으로 재합의함으로써 분규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 됐다.

노동계만 노사정위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의보통합을 논의하는 노사정위에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불참했고, 경영계도 지난해 노조전임자 임금문제 지급문제를 두고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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