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양재호-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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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싸움꾼' 이세돌 호기 접고 장고에 장고

제5보 (80~98)〓패세에 몰린 梁9단이 15분간의 고통스런 장고 끝에 80으로 끊었다.

李3단도 눈을 부릅뜨고 수를 본다. 굉장한 끈기다. 기세로 밀어붙이던 예전과 달리 이 소년은 무섭게 끈질기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9분 만에 81, 83의 후퇴.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얌전한 모습이다.

'참고도' 처럼 흑1로 나오는 수가 최강이다.

그러나 백도 2에 젖혀 맛을 노리게 된다.

12까지 수가 난 모습인데 이곳은 아무튼 맛이 나쁜 곳이어서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수가 나버린다.

그걸 느끼고 이세돌은 썰물처럼 후퇴했고 아예 85로 못을 박아버렸다.

86엔 87, 88엔 89. 일체의 불란 없이 깨끗하게 물러서는 이 자세가 검토실의 미소를 자아냈다.

이세돌은 '싸움꾼' 이었다. 거의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넓어 그는 자신보다 강한 자들에게 무수히 얻어맞기도 했고 한때의 호기로 좋은 바둑을 여러 번 역전당하기도 했다. 호기를 거둔 83, 85, 87, 89 등은 "이젠 아닙니다. 나도 변했습니다" 고 말하고 있다.

형세는 흑의 대 우세. 그러나 93의 단순한 젖힘에도 8분이 걸리고 95의 뻗음에도 2분이 걸린다.

이세돌이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98에 붙이자 하변 흑돌들도 대충 백의 수중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좌상 백△들도 9점이고 좌하 흑▲들도 9점이다.

그러나 집을 세어보면 큰 차이. 좌상 흑집은 무려 85집을 넘는데 좌하 백집은 다 잡는다 해도 60집이다. 대차가 난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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