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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장쩌민 은퇴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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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인사를 읽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시장원리가 대폭 도입돼 예측 가능성의 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치는 제도화가 세계에서 가장 덜 돼 있고 폐쇄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 정치 연구자들은 당내 서열이나 사진 속 인물 배치를 보거나, 공식 문헌의 행간을 읽는 전형적인 공산주의권 연구 방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국 지도부의 후속 인사는 밀실 궁정정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더욱 알아내기 힘들다.

16일부터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6기 당 대회 4차 전체회의에선 장쩌민(江澤民)의 거취가 최대 관심거리다. 장쩌민은 군의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그는 2002년 가을 제16기 당 대회에서 당의 최고직인 총서기를, 2003년 봄에는 국가 최고직인 국가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이양했으나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아직 갖고 있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당 권력은 없다'는 것이 중국 정치의 기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87년 제13기 당 대회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제외한 모든 주요 직책에서 물러났다. 89년 11월에는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당 총서기에 갓 취임한 장쩌민에게 넘기고는 완전히 은퇴했다. 장쩌민이 당 총서기직을 후진타오에게 넘긴 지 2년이 됐다. 장쩌민이 군의 최고직에서 물러날 것인가, 그럴 경우 후진타오와 자신의 측근 중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가 초점이다.

지난달 중국 언론들은 덩샤오핑의 탄생 100주년 기사를 앞다퉈 크게 보도했다. 장쩌민을 이을 차기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결정한 것은 덩샤오핑이었다. 후진타오가 지난달 22일 10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덩샤오핑이 지도간부의 종신제를 폐지하고, 2세대(덩샤오핑)에서 3세대(장쩌민)로 권력이양을 순탄하게 이뤄냈던 점을 언급한 것은 시선을 끌 만했다. 후진타오는 연설에서 "장쩌민 동지를 주요 대표로 하는 현재의 중국 공산당"이라며 장쩌민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통상 장쩌민이 '주요 대표'가 아니라 '지도의 핵심'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후진타오가 의도를 갖고 장쩌민을 격하한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그룹과 장쩌민 그룹의 파벌 싸움은 요즘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상태다. 후진타오는 지난해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건 이후 권력의 핵심 인사를 쥐고 있던 장쩌민 그룹에 대항해 오다 올 들어선 거센 반격도 하고 있다. 매년 여름 피서를 겸해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리던 회의도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서 중단됐다. 후진타오는 장쩌민 등 원로들의 고언을 피하고 있다.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나도 후진타오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양측의 권력은 백중세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시에 타도할 만큼 크지 않다. 후진타오는 7월 말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처음으로 (장쩌민의 아성인) 상하이(上海)를 갑자기 방문, "전국을 지도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일종의 타협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쩌민이 주석직에서 물러날 경우 조건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주면 장쩌민의 측근인 쩡칭훙(曾慶紅)을 부주석으로 하거나, 쩡칭훙을 주석으로 하고 후진타오가 부주석에 만족하는 방안이다. 장쩌민이 은퇴한 뒤에도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장쩌민의 중국 내 평판이 땅에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에서도 장쩌민의 퇴진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 주요 과제로 내세웠던 대만 통일의 꿈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더 이상 권력에 집착하면 '늙은이의 폐해'라는 평가가 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쩌민은 퇴진할 경우 세상에서 일시에 잊힐 것을 우려해 더욱 권력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이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본질적인 차이다.

고쿠분 료세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정리=오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