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내에 출시한 닌텐도DS는 올 상반기까지 250만 대 이상 팔렸다. 이에 비해 사용자 대부분이 즐기는 인기 게임인 ‘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45만 장, ‘닌텐독스’는 30만 장 정도 팔리는 데 그쳤다. 익명을 원한 닌텐도코리아 관계자는 “나머지 200만 대 이상의 게임기 가운데 상당수에는 불법 게임이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의 불법 SW 모니터링 관제실. 이곳에선 하루 24시간 국내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불법 유통되는 SW 현장을 적발하는 일을 한다. 이날도 SPC는 불법 프로그램들이 올려진 해당 사이트마다 적발 SW 삭제 요청을 하느라 분주했다. 김태익 AP(저작권 위반 대응) 팀장은 “불법 SW를 자동으로 찾아내는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사이버 공간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PC 상가 등 오프라인에서 불법 SW를 많이 단속했지만 요즘엔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기 때문에 적발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 강국’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닌 셈이다. 온라인 불법 복제 유혹을 부추김으로써 ‘SW 후진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닌텐도 게임이나 한글 워드프로세서 등 인기 SW들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더 편하고 싸게 불법 프로그램을 구할 수 있다. 성균관대 이해완(법학) 교수는 “초고속인터넷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한 콘텐트의 불법 복제를 방치하면 창작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개발 의욕을 꺾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의 SW 시장은 한 해 1조8000억원 규모로 후진국 수준이다. 국내 기업으로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5개 게임업체가 연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릴 뿐이다. 그러자 ‘IT 경쟁력’도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김지욱 SPC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SW 저작권 문제는 이제 ‘우리끼리만 눈감아주면 된다’는 수준을 벗어났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수시로 SW 산업 육성을 얘기한다. 글로벌 100대 패키지 SW 기업을 두 개로, 연매출 1000억원 이상 SW 기업을 18개에서 27개로 늘린다는 전략도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따로 논다. 불법 SW를 막아야 할 정부나 공공기관마저 공짜 프로그램 사용에 가담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올 상반기에는 아예 400여 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불법 SW 단속에 나섰을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이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톨릭대 서효중(전자공학) 교수는 “SW 유통이 오프라인의 패키지 제품 구매에서 온라인 내려받기 시스템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개발자가 직접 고객에게 SW를 선보이는 공개시장(오픈마켓)이나 구글처럼 SW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는 방식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SW 유통 구조를 잘만 활용하면 불법 복제를 시장 원리로 풀어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김기창(법학) 교수는 “인터넷에 대량으로 콘텐트를 올리는 ‘헤비 업로더’를 처벌하는 것보다 이들이 콘텐트를 유포해 얻은 수익을 개발자를 비롯해 포털·웹하드업체 등 네트워크 운영업체들과 나눠 갖는 구조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