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신문산업 활성화 방안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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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런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 구조는 매우 모범적이다. 언론재단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서울에서 발행하는 전국 종합일간신문이 12개이고, 각 권역에서 발행하는 지역 종합일간신문이 104개, 전국 각지에서 발행하는 지역 주간신문이 445개에 이른다. 그야말로 아주 이상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신문산업은 그야말로 중병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종합일간신문이 12개에 이르지만 흑자를 내고 있거나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신문은 3분의 1에 미칠까 말까다. 나머지 3분의 2는 만성적인 경영난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전국지가 이 지경이니까 지방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거의 예외 없이 반전의 기약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해 가고 있다.

신문사 경영이 어렵다 보니 종사자에게 주는 급료가 만족스러울 턱이 없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신문사는 5대 그룹 종사자의 수준을 웃돌 만큼 월급을 많이 주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옛이야기일 뿐이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대다수 신문사 기자의 급료는 현재 최저 생계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신문의 경우 더욱 한심하다. 거의 대부분의 지방신문사가 취재 실비 수준을 주고 있고, 아예 월급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적지 않다.

신문 경영이 왜 이런 처지에 내몰렸는가? 민주화 이후에 케이블 TV니 위성방송이니 인터넷이니 IPTV니, 일일이 예를 들기도 어려울 만큼 새로운 매체가 많이 등장해 종전에 신문과 방송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은 광고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뉴미디어가 나올 때마다 광고시장 자체가 신장하기보다는 광고효과가 낮은 매체에서 광고효과가 높은 매체로 광고비 지출이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광고효과가 높지 않은 신문, 특히 서울의 마이너 신문과 지방 일간신문의 광고가 뉴미디어 쪽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미디어법이 발효해 서울의 메이저 신문이 종합편성 채널이나 보도채널을 확보하면 어떻게 될까. 몇 개 신문은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겠지만 서울의 마이너 신문이나 지방 일간신문의 경영은 극한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미 빈사 상태나 다름없는 처지인데 앞으로 더 광고를 빼앗기면 그 신문들은 아예 죽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신문은 몇 개만 남고 사라져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신문은 어느 매체보다 복잡한 게이트키핑(gate-keeping) 과정을 거쳐 뉴스를 생산한다. 기자가 책임 있는 당국에서 기사를 취재해 기사를 쓰면 취재 파트의 차장, 부장이 차례로 그 기사를 살펴보고 편집회의를 거쳐 기사를 취사선택한 뒤 뉴스 가치에 따라 각기 다른 위치에 다른 크기로 편집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필요할 경우 심층취재를 해 추가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장 믿을 만하고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신문이다. 특히 다양한 신문이 경쟁할 경우 독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얻는다. 사회가 건전하려면 신문산업의 피라미드 구조는 견실하게 유지돼야 한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 불가피하다. 디지털 시대에 낡은 장벽으로 칸막이를 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다. 그러나 신방 겸영으로 정책을 바꾸려면 정부는 겸영이 언론산업, 특히 신문산업에 미칠 후폭풍을 최소화할 방안도 아울러 강구해야 한다. 신문매체의 발행과 관련한 법령 전체를 면밀히 검토해 손질하고 인쇄시설 공동 이용, 공동 배달 등의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신문의 자율 합병을 정책적으로 강력히 유도해야 한다. 마이너신문사가 종편 채널이나 보도채널 신청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것을 권장할 필요도 있다. 나아가 유럽의 각국이 사양산업화하는 신문을 돕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는지에 대해서도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죽을 것은 죽어야 한다는 식의 냉혹한 논리만으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