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부패척결"에 잠못드는 러시아 재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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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러시아 정치계의 '큰 손' 올리가르키(과두산업재벌)들이 살길 찾기에 바쁘다. 금융.석유업 등을 근간으로 언론사까지 주무르는 이들은 1996년 대통령 선거 때 보리스 옐친을 재선시킨 일등 공신들. 크렘린과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자신들과 별 관계가 없었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옐친의 후계자로 급부상해 '부패척결' 등을 앞세우자 마음이 편치 못하다.

우선 아에로플로트 항공.ORT-TV의 실질적 소유주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국가두마(하원)의원과 알렉산드르 스몰렌스키 SBS-아그로 방크 그룹 회장, 그리고 석유재벌인 로만 아브로보비치 시브네프티사 회장 등은 옛 크렘린 왕당파 세력과 연계해 푸틴과의 물밑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현단계 러시아에서는 국가개입형 권위주의적 경제사회정책이 필수적" 이라는 푸틴의 주장에 반발하지 않으면서도 푸틴에게 자신들을 배제한 산업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은근히 강조하는 '강온 양면정책' 을 쓰고 있다.

베레조프스키는 지난해 총선 때 푸틴의 정적 제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오는 5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장 선거에서는 블라디미르 야코블레프 현 시장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푸틴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다. 야코블레프는 푸틴의 정치적 스승인 아나톨리 소브차크 전 시장을 누르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장에 당선됐다. 그래서 푸틴은 한때 야코블레프를 '배반자' 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푸틴의 싱크탱크인 전략발전연구소팀이 상주해 있는 '알렉산드르 하우스' 가 원래 스몰렌스키의 저택이었다. 이들은 이미 푸틴과 새로운 '끈맺기' 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반면 표트르 아벤 알파 그룹 회장, 전력독점회사인 통합에너지 시스템의 회장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총리,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그룹인 가즈프롬의 렘 바히레프 회장 등은 맹렬 구애형이다.

푸틴의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밝히며 온갖 채널을 통해 접근 중이다.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모스트 그룹 회장 등은 지난해 총선과 이번 대선과정에서 푸틴과 차갑게 대립했다. 특히 모스트 그룹은 계열사인 N-TV의 면허권 문제, 정부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문제 등이 걸려 있어 존폐를 위협받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구신스키 회장은 푸틴의 정적이었던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의 최측근이다. 그는 루슈코프가 곧 푸틴과 정치적으로 제휴할 것으로 보고 그 덕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올리가르키들은 독자적인 생존의 길도 모색 중이다. 3일자 일간 브레마에 따르면 시브네프티사와 시베리아 알루미늄사, 그리고 알파그룹 등이 알루미늄산업을 통합하려는 것은 올리가르키들이 독자적으로 대외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이들이 뭉칠 경우 2백30만t의 생산량으로 세계 3대 메이저 대열에 들어설 수 있으며 정부도 외국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의 국내 알루미늄산업 독점을 눈감아 줄 가능성이 크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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