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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전선을 좁혀야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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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맹자의 꾸중을 들어야 할 지도자가 멀리 열사(熱沙)의 나라에 있었다. 두바이의 셰이크 무하마드 말이다. 욕심을 부려도 너무 부렸고 서둘러도 너무 서둘렀다. 세계서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 버즈 두바이(Burj Dubai)도 좋고, 야자수 닮은 인공섬도 좋지만 닿는 곳까지만 발을 뻗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할 순 없었더라도 한 걸음에 한 계단씩 올라섰다면 발이 못 미쳐 넘어지는 사고는 없었을 일이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낙상(落傷)이 남의 일만 같지 않은 건 우리의 부지런한 대통령의 일 욕심과 성마름도 그 못지않은 듯한 까닭이다. 두바이처럼 국내총생산(GDP)의 6배에 달하는 건설공사 퍼레이드까진 아니더라도 손에 쥔 일의 가짓수는 결코 덜하지 않다. 넘겨받은 폭탄인 세종시 문제 하나도 버거운데 4대 강 사업과 교육 개혁, 행정구역 개편, 공기업 개혁, 노조 문제에 개헌 문제까지 안 뻗은 게 없다. 마치 이 땅의 모든 문제를 이제 반밖에 안 남은 임기 동안 모두 해결하겠다는 태도다.

말인즉슨 옳은 얘기다. 홍보수석의 설명대로 모든 게 뿌리 깊은 문제들이라 마냥 미뤄둘 수 있는 게 없다. 대통령의 진심도 이해하고 남는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어찌 양심상 후임자에게 떠넘길 수 있겠나.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만사를 해결할 순 없는 거다. 요순 시대도 그랬는데 오늘날에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권위주의 시절처럼 반대하는 입에 재갈 물려놓고 일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CEO가 결정하면 반대하던 사람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기업도 아니다.

그렇다면 먼저 일의 순서를 정했어야 했다. 급선무가 뭔지 생각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야당이 있는 경우엔 특히 그렇다. 게다가 야당 못지않은 견제세력이 여당 내에 포진한 상황이라면 두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모든 문제로 전선을 확대하다 보니 어디 하나에 전력투구할 수 없는 것이다. 곳곳에서 소리만 요란할 뿐 뭐 하나 될성부른 게 없다.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는데 야당의 이해는커녕 “불복종 항거”의 장외투쟁이란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이러다 아무것도 못할까 두렵기까지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비슷한 낭패가 있었다. 1940년 5월 팬저 3, 4호를 앞세운 독일 전차부대가 난공불락의 프랑스 마지노선을 무참히 뭉개버린 사건이다. 프랑스는 이 패배 후 6주 만에 항복하고 만다. 당시 프랑스 전력은 결코 독일에 뒤지지 않았다. 프랑스 전차인 샤르B는 두꺼운 장갑과 75㎜ 주포를 장착해 37㎜ 포를 가진 팬저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데도 힘 못 쓰고 패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750㎞에 걸친 마지노선을 따라 전차병력이 분산된 것이다. 게다가 샤르B엔 팬저에 장착된 무전기가 없었다. 독일의 자체 분석으로도 세계 최강이던 프랑스군은 무전 교신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작전을 조율하며 한 곳을 집중 공격한 독일의 전격작전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역사엔 ‘만약’이 없지만 만약의 역사를 생각하는 건 현실을 사는 자의 특권이다. 거기서 전선을 좁히고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건 급선무를 아는 사람의 몫이다. 팬저가 그랬듯 내부 소통이 먼저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