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과공개 엄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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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대 총선에 나서는 후보의 전과(前科)기록 공개를 둘러싸고 각당과 후보들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고, 법적으로 말소된 과거의 허물까지 공개하는 것이 인권보호 측면에서 합당한 것인가를 놓고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후보는 공인(公人)으로서 마땅히 과거의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법운영 현실이 정치적 상황에 따른 굴곡이 있었다는 점을 유념해 전과공개가 후보에 대한 이중징벌의 역기능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한때 말소된 전과까지 공개하는 데 대해 인권침해 가능성과 형 실효에 관한 법률과 상충한다는 법리를 들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법무부측이 선거법에 따른 선관위의 전과조회에 응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처사다.

또 잦은 사면.복권으로 인해 중죄를 짓고도 아무 흔적 없이 풀려나는 예들이 허다해 말소된 전과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인정해야 한다.

입법과 예산심의 등 중요 국사를 담당할 국회의원은 공인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요즘처럼 정치가 불신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기.폭력.간통에다 심지어 강간 혐의까지 받는 파렴치범들이 전력을 속이고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가중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외국에서는 대학 시절의 대마초 흡연 경력까지 떠올려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적 자질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검찰권의 정치적 왜곡 등 법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현실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대 정권이 정치적 반대자의 사생활이나 사회활동을 샅샅이 뒤져 먼지 털듯 흠을 잡아내거나 법으로 옭아맨 사실을 우리는 적지 않게 목격해 왔다.

때문에 이런 표적사정과 정치적 억압의 희생자들이 똑같은 전과의 잣대로 재단돼서는 곤란하다.

법무부나 선관위가 이런 일들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시민단체나 언론 등 정치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기구들이 본인들의 해명 등을 발판으로 세세하게 분석해 억울한 피해가 생기거나 흑색선전에 이용되지 않도록 신중히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관위가 이런 자료들을 인터넷에 올려 누구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전화문의 등에 대해서도 답변해 주기로 한 것은 후보검증의 본 취지에 적합한 대응 자세다. 개인에게 치명적인 전과자료를 선거공보 등에 포함해 함부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 도입된 새로운 제도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제도적으로 정착되려면 엄정한 시행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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