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사 규명 법안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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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이 과거사 진상 규명기구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안을 둘러싸고 야당.법조계에선 위원회 구성 방식과 공소시효 정지 규정 등에 우려를 제기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의 기본법 초안에 따르면 과거사 규명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두며, 이 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상임위원 5인을 포함한 15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전원을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구성방식과는 달리 입법.사법부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 더구나 국회는 여대야소 상황이다. 이러니 위원회가 친여 인사들의 독무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가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사건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경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토록 한 것은 현행 법 체계와 배치된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제기로 시효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행위에 대해 공소시효를 둔 것은 아무리 흉악한 범죄인이라 하더라도 인권이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사 규명을 위한 법이라고 해서 예외 규정을 둔다면 헌법상 평등권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당한 사유 없이 동행명령을 거부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동행명령 거부자가 조사 대상자인지 참고인인지조차 구별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처벌 규정만 두었으니 이들을 모두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닌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한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등 다른 특별법에 비해서도 양형이 지나치게 높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많은 시간과 철저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열린우리당은 야당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쳐 문제의 조항들을 과감히 손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