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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희의 프리미엄 경영]M&A 성공, 맹수들에게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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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30면

이업종 교류, 퓨전(Fusion)의 개념이 기업경영에 도입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융·복합이 기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과거 별개로 간주한 영역들이 모이고 섞여서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고 신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흐름이 본격화하는 데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이다. 기업경영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새로운 개념의 융·복합이 활발하다. 역사적 영웅들에서 리더십 모델을 찾고, 이집트·로마와 같은 고대국가에서 시스템의 원형을 탐색한다. 최근에는 자연계의 진화과정에서 새로운 경영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수억 년 동안 진화해온 생물체는 그 자체로 효율성이 극대화된 개체다. 단위 생물체가 모여 형성된 생태계 역시 높은 수준의 상호관련성과 합리성을 담고 있다. ‘잔인한’ 포식자가 ‘선량한’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살풍경이 단순한 비극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먹히는 당사자에게는 불행이지만, 실상은 약하고 병든 개체를 포식자가 처리해 줌으로써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수합병(M&A)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적대적 M&A의 경우 공격자와 수비자는 초원의 포식자와 초식동물처럼 ‘사느냐, 죽느냐’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공격자는 치밀한 준비를 거쳐 상대를 덮치고, 수비자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 길을 찾는다. 관전자 입장에서는 공격자의 무자비함에 분노하고, 수비자의 처절함에 동정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M&A에서는 공격보다는 수비 쪽이 심정적으로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자연 생태계의 포식과정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필연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불가피한 절차임을 알 수 있다. 공격자는 기업 생태계의 순환과 진화를 촉진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M&A 전략은 초원 맹수들의 사냥법과 그 맥락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초원에 사는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은 대개 30%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사냥에 실패하면 급격한 체력 소모를 겪게 된다. 실패가 계속되면 성공률이 더욱 낮아지면서 굶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 과정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맹수들은 사냥감을 선정하고 공격하는 단계까지 극도의 신중함을 보인다. 공격 자체는 순식간이지만 사전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끈질긴 관찰을 통해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하거나 병든 먹잇감을 골라내고 집중적으로 따라붙어 성공률을 높인다.

이처럼 포식자들의 사냥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고, 이는 기업경영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사자도 굶어 죽는다', 서광원). 포식자들은 ‘관찰→목표설정→접근하기→승부의 순간→마무리’의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M&A의 진행과정도 비슷하다.‘관찰’은 M&A의 출발점이다. M&A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끈질긴 관찰을 통해 유망한 분야와 업종을 먼저 선별해내야 한다. 2~3년이 걸리기도 하는 관찰기간에 필요한 것은 분석력과 인내력이다. 펀드 매니저들이 속칭 ‘노가다’라고 부르는 이 기간 동안 철저하고 집요한 분석을 거쳐 가능성 있는 업종과 분야를 선정한다.

‘목표설정’은 2단계다. 관찰을 통해 선정된 분야에서 성공가능성과 기대수익률이 높은 목표물을 골라낸다. 맹수들이 어리거나 병약한 대상을 고르듯 M&A 공격수는 저평가된 우량회사를 찍는다.

‘접근하기’는 공격 직전 단계다. 대상회사의 주주구성, 경영진, 조직구조, 기업문화 등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행동이다. 특히 대상기업의 내부 역학관계가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 이를 활용해 공격전략을 세우고 공격시기를 가늠한다.

‘승부의 순간’은 상대의 급소를 찾아 공격에 나서는 순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승부사의 냉혹함과 집요함이다. 일단 공격에 나서면 확실히 이겨야 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이 시기에는 성공의 장애물일 뿐이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전리품을 거둬 들이는 단계다.

‘마무리’는 공격 후 전리품을 확보하는 단계다. 의외로 맹수들은 애써 잡은 먹이를 하이에나·들개와 같은 다른 포식자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M&A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주주와의 갈등, 노조의 반발, 통합의 지연 등으로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성공적인 ‘M&A후 통합전략(PMI: Post Merger Integration)’은 마무리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자연 생태계가 진화할수록 먹이사슬이 정교해지듯 기업 생태계가 진화하면 다양한 상호작용 구조가 형성된다. 호황기에는 벤처펀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일정 부분 거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기초를 닦는다. 불황기에는 동물의 시체를 먹어 치우는 독수리와 같은 벌처펀드가 생겨나 경쟁에서 탈락한 좀비 기업을 처리한다. 평상시에는 M&A 펀드가 자산효율성이 떨어지거나 경영권 이슈가 발생해 잠재가치 창출수준을 밑돌고 있는 기업들을 흡수하고 재탄생시킨다. M&A는 기업생태계의 진화 촉진자인 셈이다.


한찬희 대표는 1955년생. 78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81년 세화회계법인 회계사로 출발해 아서앤더슨, 안진을 거쳐 올해 5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가 됐다. 회계법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봤다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중공업 매각 등 굵직한 인수합병과 기업 구조조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요즘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 자선사업에 빠져 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사회연대은행에서 무보수 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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