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이라도 더 … 발로 뛰는 석학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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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택(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이 26일 다리에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채 국회에 나타났다. 지난 19일 문희상 국회 부의장, 신해룡 예산정책처장 등을 만나러 국회에 왔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인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즘 여의도에선 노벨상 수상자, KAIST 총장, KIST 원장 등 세계적 석학들이 소속 기관의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한 원장은 이날 ‘과학기술포럼’ 토론회에서 KIST 선진화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한나라당 이군현·김세연·박영아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한 원장은 “당초 정부가 원장을 맡아 주면 차세대 태양전지, 물재생 담수화 기술 연구비 등 400억원 지원을 약속했었다”며 “하지만 예산안엔 180억원만 반영돼 70억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의원뿐 아니라 국회 전문위원, 재정부·지경부·교과부 국장을 열심히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동포인 한 원장은 미국 복합소재학회장을 지냈고 지난 8월 교과부의 ‘세계 수준 연구소’ 구상에 따라 원장에 부임했다.

앨런 히거 광주과학기술원 히거신소재연구센터 소장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민주당 강운태 의원을 만났다. 4년6개월간의 플라스틱 태양전지 연구비 47억원을 지원받았으나 내년부터 예산지원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광주(남구) 출신이자 예결위원인 강 의원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히거 소장은 “이 분야는 한국이 가장 앞서 있고 2015년에 시장 규모가 40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강 의원을 설득했다고 한다. 미국인인 히거 소장은 전도성 고분자를 발견해 200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2005년 6월 ‘노벨상 수상자 초빙사업’으로 소장을 맡았다. 현재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통령 과학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서남표 KAIST 총장도 지난 19일 지식경제위원회의 전문위원과 한 시간 넘게 맞짱 토론을 벌였다. 카이스트가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길 바라는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차 연구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낸 전문위원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서 총장은 종이에 각종 표를 그려가며 원천기술 개발의 필요성 등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양지원 부총장은 “서 총장과 함께 의원들을 거의 두 번씩은 만났다”며 “전문위원이나 예산정책처 공무원 중 이공계 출신이 적어 연구를 설명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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