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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기 왕위전] 원성진 - 유창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반짝하고 빛난 元2단의 백88

제4보 (67~92)〓劉9단은 판을 조용히 밀고 있다.

元2단이 빠르게 백△를 지켜 실리를 취했으나 미동도 하지 않고 67, 69, 71로 공격해가는 흐름이 육중한 느낌을 준다.

승부란 언제나 불안하다. 사람도 본시 불안한 존재다. 이 모든 불안한 그림자를 떨치고 승부에 임해 판을 조용히 밀고 나간다는 것은 실력뿐 아니라 오랜 수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그마한 元2단이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곁엔 몇사람의 선배 프로들이 커피잔을 든 채 바둑을 지켜보고 있다. 15세 원성진과 세계챔피언 유창혁의 한판은 재미있다.

원성진은 어느 정도 반격할 수 있을까. 유창혁도 부담스럽겠지. 지켜보는 눈마다 호기심이 반짝이고 있다.

元2단은 72로 붙여 82까지 빠르게 수습했다. 그 수법이 간명하고 정확하다. 이제 바둑은 좌상귀와 중앙이 미지수이긴 하지만 거의 골격이 잡혔다. 집은 어떨까.

"아직은 먼 바둑이지만 백은 중앙 쪽이 약간 엷어 신경쓰인다." (양재호9단)

83 잇자 84, 86의 선수. 그 다음 88이란 한 수가 감탄을 자아냈다. 흑엔 '가' 로부터 계속 밀어 끊어버리는 수가 있다.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위쪽 중앙의 형편이 조금만 달라져도 이 수는 생사를 좌우하는 엄청난 노림수로 돌변하게 된다.

그것을 88의 선수가 깨끗이 예방하고 있다.

"별것 아닌 듯 싶지만 88은 날카롭다.원성진의 재능이다."

88은 바닷가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조개껍질 같은 수였다.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기억에는 고스란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 수. 그리고 이런 수들에 힘입어 꼬마 元2단은 유창혁이란 강풍에 밀려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92. 마지막 큰 곳. 흑의 공격에 백이 선수를 잡은 것은 길조다(79〓△).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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