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뿌리가 바뀐다] 3. 30대 벤처성공사회, 건강할까-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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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1세기 문턱을 넘어선 우리 사회에 벤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 유수의 재벌 그룹들이 줄줄이 파산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인가 생소한 이름의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기 시작했다.

새파란 20~30대 사장들이 앞다투어 신제품을 내놓고 코스닥에 상장하자마자 억만장자로 둔갑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벤처기업가 집단의 출현은 IMF 이후 지향점을 상실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벤처기업가들의 출현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계층 구조에 커다란 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는 소수 재벌들이 좌지우지해 왔다.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재벌 총수들은 '고독한 결단' 을 통해 대기업을 키웠고 그들의 부(富)는 2세, 3세로 대물림되면서 굳어져가는 듯 보였다.

'돈많은 노동자' 의 신화는 이제 '경영능력은 유전한다' 는 신화로 대체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창업이라는 새로운 '골드 러시' 에 의해 이러한 신화는 깨져가고 있다. 굴뚝산업에서 이룬 성공이 더 이상 비트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벤처기업가 집단의 출현은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지난 세대 동안 재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성공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여겨졌다. 부모들은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자식들을 일류대학에 보냈다. 일류대학 졸업장은 대기업에의 취직과 출세를 보증하는 면허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벤처기업가에게는 일류대학 졸업장이 필요없다. 세계 최대의 부를 일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인 빌 게이츠가 대학 중퇴자임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학력.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골드 러시' 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에 수없이 많은 젊은이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대학 졸업장, 틀에 박힌 전공 분야는 이제 의미가 없다. 오로지 남과 다른 것을 고안하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중요할 뿐이다.

벤처기업가 집단의 출현은 기존 기업의 내부까지도 뒤바꾸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존의 대기업들은 거대한 위계서열 조직에 의거해 경영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점점 심해가는 인사적체 속에서 신입사원의 승진 가능성은 줄어들어 갔다. 최고경영진이 되겠다는 야망은 부질없는 것에 불과했다. 관료화돼가는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제안이나 쇄신방안은 있다 해도 '찻잔 속의 폭풍' 일 뿐이었다.

그러나 벤처기업으로의 엑소더스가 진행됨에 따라 대기업들은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벤처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진행할 뿐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아끼고 그에 합당하게 대우하는 방향으로 조직문화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가 집단의 출현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벤처기업가들이 한탕주의식 투기에 휘말리지 않고 기술개발에 보다 주력하면서 자신이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성장해간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방향으로 힘을 합친다면 벤처기업은 재벌체제를 대체하는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조형제<울산대 교수.사회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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