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Battle 승자의 대결 2라운드] 플로라 vs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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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양갈비에 된장·간장 입히고 피겨퀸 사랑 얹었지요

‘김연아에게 보내는 편지’. 장윤석 셰프의 요리는 한 편의 편지로 구성됐다. 코스마다 만들면서부터 먹기까지의 과정에 ‘국민의 응원과 애정 그리고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애피타이저는 투명 컵에 꽃다발 같은 채소와 핑크빛 거품을 담고 그 위엔 필로 페이스트리로 3층 탑을 쌓아 예쁜 트로피 모양을 형상화했다. 하나 메시지는 비장하다. 샐러드를 먹기 위해 컵 위의 페이스트리를 깨면 거품도 꺼져버린다. ‘거품과 같은 인기와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다. 메인의 간장·된장에 절인 양갈비는 담음새를 통해 ‘한국인의 변치 않는 애정’을 풀어냈다. 또 디저트의 직접 만든 생치즈 셔벗은 ‘우리가 정성을 쏟을 테니 더 몰두하라’는 응원을 담았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플로라-장윤석 셰프
한눈팔지 마라, 초심 지켜라
쓴소리도 듬뿍 담았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장윤석(32·플로라), 송용욱(36·르 꼬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 셰프는 이번에도 이겼다. 그들에겐 별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각대장’이다. 두 셰프는 배틀 장소에 제시간에 맞춰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헐레벌떡 뛰어와 부랴부랴 음식을 준비하며, 늘 “이번엔 정말 자신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늘 이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장 셰프는 주제를 듣고, ‘이 친구가 응원이 더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다. 인생에는 늘 고비가 있듯, 모두가 좋아하고 칭찬할 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나는 ‘쓴소리’가 필요하다 싶었다. 그래서 치즈·양갈비·과일 케이크 등 고칼로리 음식으로 식단을 짰다. ‘먹고 칼로리에 부담 가져서 더 뛰라’는 의미였다. ‘다른 것에 한눈 팔지 말고 몰두해라, 초심을 잃지 마라…’ 등 음식마다 진심으로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국민의 마음도 함께 담았다. ‘변치 않는 사랑으로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요리로 풀어냈다. 또 직접 치즈를 만드는 등 정성을 들였고, 선수와 늘 함께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기 위한 요리를 만들려고 했다.

“주제가 주어지면, 스스로 무수히 질문하고 답을 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갑니다.”

이들의 요리에는 늘 스토리가 있다. 또 음식의 난이도도 갈수록 올라간다. 애피타이저로 내놓은 게살 샐러드에 3단의 필로 페이스트리를 쌓은 것을 보고 한 심사위원은 “난이도가 트리플 점프·더블 악셀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두 셰프는 배틀을 하면서 조금씩 잃어가던 초심을 찾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어떤 기분이 들까를 계속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고 이런 마음이 전달되면 만든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대생’ 연아 위해 떡볶이 파스타 선물합니다

‘자랑스러운 김연아, 사랑합니다’. 김정현 셰프는 초지일관 김연아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음식을 냈다. 메인으론 송아지 정강이뼈를 더덕주와 십전대보탕으로 맛을 낸 이탈리안 스타일의 보양식을 준비했다. 오소부코를 토마토소스 대신 한약재를 사용해 살짝 비틀어 만든 것이다. 김 셰프는 이 요리를 위해 자녀들 결혼 때 쓰려고 자녀들이 태어날 때마다 자연산 더덕을 구해 담가 뒀던 더덕주 두 병을 헐었다. 또 애피타이저에선 국가대표 선수 김연아가 아닌 여대생 김연아를 위해 김 선수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보라색 라비올리로 가볍게 기분을 풀어 주는 요리를 만들었다. 디저트는 아이스링크를 연상시키는 슈가 플레이트 위에 홍삼 초코 퐁당케이크를 올려 국민의 뜨거운 성원을 강조했다.

글=이가영 기자

파라다이스-김정현 셰프
애들 결혼 때 쓰려던 더덕주 아낌없이 재료로 썼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정현(38)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셰프는 셰프 배틀 기간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배틀이 진행되는 수개월은 고됐다. 업무를 끝낸 뒤 시작되는 연습은 밤샘으로 이어졌고, 승자의 대결에 진출한 유일한 지방 팀으로 배틀 전날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난 요리를 시도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만족이 훨씬 큰 기간이었다고 했다.

“배틀에서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4강까지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다만 절대 창피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는 생각에 후배들과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죠.”

그는 비록 졌지만 ‘쿨’했다. 그는 4강전을 위해 두 자녀가 결혼할 때 각각 쓰려고 담가두었던 자연산 더덕주 두 병도 아낌없이 헐었다. 이것도 그가 최선을 다한 모습 중 하나였다. 배틀로 개인적인 경사도 있었다. 김 셰프는 지난달 창립 기념식에서 셰프 배틀 출전으로 회사의 성가를 드높였다며 공로상을 수상했다.

‘오소부코’는 그가 셰프 초년병 시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배치받았을 때 요리에 눈을 뜨게 해준 음식이다. 매일 밤 일과가 끝난 뒤 혼자 오소부코를 연습하며, 좋은 요리사가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김 셰프는 자신에게 요리의 끼와 솜씨를 물려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팀워크를 발휘해준 안성빈(35)·허창효(36)·강동휘(31) 셰프와 배틀 참가로 자리를 비워도 군말 없이 응원해준 레스토랑 ‘꼴라비니’ 직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Win 장윤석 셰프] 이야기, 맛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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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이었다. 메인을 제외한 전 코스에서 동점이 나왔다. 심사단 사이에서 “승패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메인에서 4표 중 3표를 얻은 장 셰프를 승자로 결정했다. 편지로 구성한 장 셰프의 요리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요리를 만들고 먹는 행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었다. 김 셰프의 한식을 응용한 이탈리안 보양식은 그 자체로 맛있었고,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았다.

●애피타이저 장 셰프가 요리에 담긴 ‘초심을 잃지 마라’는 의미를 설명하자, 심사단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작품처럼 보이는 음식을 먹는 방법 자체가 김연아 선수에게 쓰는 한 편의 충고 편지였다. 김 셰프의 세 가지 애피타이저는 한 접시 위에서 전혀 다른 세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는 평이었다. 특히 떡 절편을 이용해 파스타식으로 만든 떡볶이는 심사단의 눈길을 끌었다.

●메인 장 셰프의 ‘양갈비와 과일 케이크’는 ‘국민이 지지한다’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목을 받았다. 양고기에 곁들인 과일 케이크의 산뜻한 맛이 양고기의 냄새를 지우는 역할을 했다. 또 양고기에 파랑과 빨간색을 입혀 태극 문양을 만드는 등 곳곳에 스토리를 담은 점이 높은 평가를 끌어냈다. 김 셰프의 ‘십전대보탕을 품은 오소부코와 대추 리조토’는 십전대보탕의 향과 뼈 속에서 은은히 퍼지는 당귀 냄새가 보양식의 느낌을 강하게 줬다.

●디저트 김 셰프의 ‘홍삼 초콜릿 퐁당 케이크’는 쌉쌀한 홍삼의 맛과 달콤한 초콜릿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특히 아이스링크를 연상케 하는 설탕으로 만든 접시는 셰프의 정성이 듬뿍 느껴졌다. 장 셰프의 마스카포네 치즈 셔벗은 시원하고 깔끔했다. 스토리텔링도 빠지지 않았다. 디저트 접시에 올린 레몬 한 조각에도 이야기를 듬뿍 담아,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코스의 조화 김 셰프의 코스는 떡볶이로 시작해 초콜릿으로 끝나는 코스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는 평이었다. “항상 탄탄한 맛을 보여준다”는 것이 심사단의 공통된 평가였다. 장 셰프의 코스는 요리마다 진심 어린 이야기가 담겨 김연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로 먹는 사람을 시종일관 감탄하게 했다는 평이었다.

심사 위원단

●박재은 요리사·칼럼니스트로 『레드쿡 다이어리』 『레드 캣 오픈키친』 등 요리 관련 TV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육감유혹』 『밥시』 등을 썼다. ●백지원 세계음식 연구가로 음식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모락모락 밥 한 그릇』 『배우고 싶은 동남아요리 한 가지』 등을 펴냈다. ●신효섭 블로그 ‘블링블링 신군 쿠킹클래스(blog.naver.com/ssambear)’ 운영자. 동양매직쿠킹클래스·이마트 등에서

가정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진호 블로그 ‘재즈요리사의 쿠킨 재즈(blog.daum.net/jazz4lovers)’ 운영자.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셰프로 활동하며 『소울 키친』을 썼다..


셰프 배틀 예선에서 승리한 셰프 8팀이 ‘승자들의 대결’을 벌인다. 토너먼트식으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2라운드에선 주제로 주어진 스토리에 따라 요리를 만들게 된다.

장소협찬: 샘표식품 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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