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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북한문학 '체제유지형' 회귀…김재용 교수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북한의 문학이 바뀌고 있다.

예술성을 강조하며 경직성을 탈피하는 경향을 보였던 1980년대 북한문학이 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와 식량난 등으로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다시 경직돼가고 있다.

김재용(원광대.국문학)교수는 '동서문학' 봄호에 기고한 '낯익은 것과의 결별 그리고 평등한 세상의 희구' 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교수는 80년대 북한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90년대초에 터진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붕괴, 90년대 중반 들어 홍수.가뭄 등 잇따른 재해로 사회시스템의 작동이 둔화되면서 체제를 지키기위한 '위로부터의 통제' 가 강화됐고, 작가들 역시 사회가 경직되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됐다" 고 밝혔다.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김정일의 문학에 대한 태도변화다. 김정일은 80년대 내내 '문학은 철학성과 예술성을 지녀야한다' 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조선문학창작사' 라는 작가모임에 보낸 편지는 '작가는 당(黨)의 동행자' 임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예술이라는 문학적 가치보다 '당의 교시' 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이런 김정일의 입장에 따라 80년대 북한을 대표하는 '4세대 작가' 들의 문학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이나 6.25전쟁의 영웅적 행위 등에 대한 예찬 대신 사회주의의 병폐로 꼽히는 관료주의나 여성의 지위에 대해 비판했다.

"없으면 우에 밀고/안되면 아래 밀며/책임은 지지 않고/ '일하는 것들을 보면…' /그러면서도 제 몸은 걱정이 되어/약을 물에 타며/또 하루" ( '그대 곁에 우리 곁에' 중) 85년에 쓰여진 윤병규의 시는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를 더욱 날카롭게 비판한 작가는 소설가 백남룡이다.

그는 '복무자들' 이란 소설에서 관료주의자로 변한 주인공의 나태함.타성을 비판하면서 북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

김교수는 "4세대 작가들이 이런 태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나 전쟁을 겪지 않고 자란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 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자라며 보고 들은 것은 전쟁이나 항일투쟁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제도 속에 타성으로 자리잡은 관료주의와 일상속의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문학은 '내부단결' 과 '조국찬양' 을 강조한다.

"아, 나는 지금/새로 받은 광복거리 나의 집 창가에서/황홀한 수도의 야경을 바라 본다(중략)이땅의 행복을 속삭이는/무수한 들불의 바다" (변홍영 '평양의 모습' 중.93년)

"즐거워라, 5월 단오/그네 씽씽 띄워 보자/하늘 훨훨 날아보자(중략)내 향촌이 제일일세 내조국이 제일일세" (백의선 '5월 단오' 중.90년)

이런 시들은 60.70년대의 전형적인 혁명적 낭만주의 계열의 시와 다를 바 없다. 김교수는 "북한문학의 중추인 4세대 작가들은 이제 50세 전후여서 성숙한 문학적 역량을 발휘할만한데, 90년대 들어 사회위기감으로 문학적 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남북간의 문학은 점점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며 아쉬워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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